1000만명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반문 시위 군중이 집결한 10월 9일 한글날은 36년 전 아웅산 테러 사건이 일어난 날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아웅산 사건은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를 말한다. 당시 전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날 대한민국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기타 수행원들이 부상당하였다. 사건 직후 대한민국의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본지는 당시 미국 CIA 북한 담당관으로서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한 마이클 리 선생의 기고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의견 불일치
1983년 9월 22-25일에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하고 등소평과 국제적인 현안문제를 토의하고 미국 남한 북한의 3자회담을 중국이 중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때 등소평은 북경을 방문 중인 미국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에게 북한의 의사를 전달하고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문제 담당기자 <돈 오버도퍼>가 10월 8일에 그에 대한 확인 기사를 썼다.
이 일은 아웅산 사건 하루 전의 일이었다. 어떤 형태이건 남한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을 첨예한 적국으로 인정하던 북한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그 제안이 실현성이 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김일성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뒷방 늙은이이고 모든 실권은 김정일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외교뿐만 아니라 모든 국정문제에 있어서 부자간에는 항상 의견불일치로 갈등을 보였다. 그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김일성의 대미접근과 김정일의 아웅산 테러공작이었다.
◇전두환의 아슬아슬한 생명유지
1983년 10월 8일, 대한민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포함한 외교사절단이 동남아 6개국 순방일정으로 미얀마가 첫 도착지였다.
그들은 10월 9일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의 묘역에 헌화하려고 도열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북한공작원들이 사전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여 대한민국 외교사절단 17명과 현지인 4명이 폭사하고 4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폭사한 17명중에는 대한민국의 부총리와 외무부 장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도착지연 때문에 생명을 구했다.
이는 북한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 주최국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고 있을 때, 시기 질투한 치사한 범죄행위였다.
중국식 개방정책을 추구한 김일성에 대립각을 세우고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하고 남한의 풍요하고 발전한 경제를 집어삼키려는 김정일의 전략을 그 애비도 어쩌지 못한 것이다.
그때 테러공작원들은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후신인 711군부대 대원들이었다. 총지휘관 김중린이 공작계획을 짰고, 전직 시리아 주재 북한 무관 김격식이 정찰국으로 들어와 공작을 집행했다. 김격식은 그 후 2010년 연평도 포격당시 작전지휘한 인간이다.
◇남한의 신중과 북한의 저돌
이 사건으로 분노한 남한 군부에서도 북한처럼 특공대를 평양에 보내어 김정일을 처단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을 앞두고 신중을 기하자며 군부의 주장을 만류했다.
한편 북한에서는 전두환 암살을 실패한 책임을 김중린에게 추궁했고, 미얀마정부가 북한의 만행을 공식발표하고 나서 69개국이 북한의 비인간적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북한과 우호적인 저개발국가들이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국제사회의 시선이 북한을 증오하는 눈초리인데 아웅산 문제를 솔직히 시인하고 과잉충성 하는 하부일꾼들의 실수였다고 변명하라고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노발대발 하면서 “그런 일은 절대로 못합니다. 끝까지 그 일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고 버틸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애비의 말을 듣지 않았다.
<평양 25시>를 저술한 전직 북한 외교관 고영환의 말에 의하면, 김 부자간의 갈등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북한에서는 모든 외교문제를 하부 간부들이 절대로 김정일에게만 보고하고, 김정일은 내용여부를 떠나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사항만 김일성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하부 간부들에게는“우리가 무슨 짓을 하여도 남조선에서는 대응을 하지 못하며 남조선의 입장은 우리가 마음먹는 대로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사제공: 더 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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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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