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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첫 주한대사 지명 미셸 스틸 전 의원과 남편 숀 스틸(Shawn Steel)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5월 8, 20265월 8, 2026
(트럼프 2기 첫 주한미국대사 후보로 13일(현지시간) 지명된 미셸 박 스틸(70·오른쪽) 전 연방 하원의원이 2023년 4월 26일 열린 한·미 정상 국빈 만찬장에 딸 시오반 스틸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04년 대선을 앞둔 여름, 나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를 취재하고 있었다. 당시 전당대회 대의원 중 아시아계는 2% 남짓. 그 척박한 곳에서 한 한국계 여성을 만났다. 미셸 박 스틸. 전국적으로 알려진 정치인은 아니었고, 캘리포니아 지방 정치에서 막 이름을 넓혀가던 참이었다.

그는 재선을 노리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기 내각에 아시아계 인사 두 명, 노먼 미네타 교통장관과 일레인 차오 노동장관을 등용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인 정치력의 약진을 확신했다.

대화가 부시 2기의 대북정책 전망으로 넘어가자 목소리 톤은 확연히 달라졌다. 정확한 표현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정치적 수사라기보단 개인사에서 나온 말처럼 감정이 실려 있었다.

옆에 있던 남편 숀 스틸은 더 인상적이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이 백인 변호사는 내게 친근하게 악수를 건넸지만, 곧 진한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매우 직설적이었고, 묻지 않은 것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조용한 배후 인물이라기보다 정치의 판을 읽고 밀어붙이는 사람에 가까웠다.

넷플릭스 드라마 “디플로매트(The Diplomat)”를 본 독자라면 주인공 케이트 대사 곁의 적극적인 남편 ‘할’, 한국식으로 말하면 김종인 씨 같은 정치 책사형 인물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무대 뒤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면 직접 판에 뛰어드는 사람.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훗날 미셸 스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줄은 몰랐다.

22년이 흘렀고 그때의 미셸 스틸이 하원의원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됐다. 한국 언론은 자연스럽게 미셸을 본다. 한국계 여성. 이북 실향민 가정의 딸. 한국어에 능통한 대사 지명자.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절반만 본 것이다. 미셸 스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남편 숀 스틸을 먼저 봐야 한다.

(미셀 스틸과 남편 숀 스틸)

숀은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미국 공화당 보수정치의 오래된 거물 내부자이기 때문이다.

1946년생인 그는 18살 때 샌퍼난도 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600km 거리를 히치하이킹을 해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추대를 위한 전당대회를 보러 갔다. 그 뒤 60년 동안 공화당 전당대회에 모두 참석했다. 골드워터에서 레이건으로, 부시에서 트럼프로 이어지는 미국 보수정치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공화당 지도부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그의 정치 이력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중 하나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리콜 운동이다. 민주당 소속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끌어내리고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지사로 만든 사건인데, 그 리콜 청원서를 설계하고 주도한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숀 스틸이었다. 당시 부시 진영 주변에서조차 무리한 시도라며 꺼렸지만, 그는 밀어붙였고 슈워제네거를 주지사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 공화당의 핵심 리더가 됐다. 2008년부터 공화당 전국위원회, 2018년부턴 RNC 집행위원회에도 들어갔다. 또한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적 반(反)증세 단체인 ‘클럽 포 그로스(Club for Growth)’ 캘리포니아 지부의 창립 이사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초강세 지역이지만, 미국에서 정치 자금이 가장 많이 흐르는 주이기도 하다. 2024년 6월, 트럼프가 뉴포트비치와 비벌리힐스에서 수천만 달러를 모금한 캘리포니아 기금 모금 행사에서, LA타임스가 그 현장의 목소리로 인용한 주인공이 숀 스틸이었다.

RNC 전국위원 직함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기부자 명단에 접근하고, 기금 모금 행사를 조직하고, 후보에게 당의 자금을 연결하는 실질적 통로다. 숀은 그 물길을 알고 만드는 사람이다. 어디서 돈이 흐르고,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그래서 미셸 지명자의 정치 경력은 숀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미셸이 2006년 캘리포니아 조세평형위원회에 처음 당선된 건 숀이 주 공화당 의장직을 마친 뒤 몇 년이 지나서였다. 남편이 쌓아온 기부자 네트워크, 당내 인맥, 선거 전략이 미셸의 정치 진입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미셸에게 자기 서사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부모는 북한을 탈출한 실향민이다. 미셸은 자신의 부모가 공산주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허허벌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말해왔다. 가치와 서사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선거용 구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향민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 북한은 외교 현안이기 전에 가족사의 일부다.

나는 하원의원 시절의 미셸을 여러 차례 행사장에서 만나고 북한 관련 코멘트도 종종 받았었다. 마음은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에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앞세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치 기술적으로 매우 노련했고,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영 김 하원의원과는 언니와 동생처럼 서로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미셸의 북한 인권 발언은 일반적인 의원실 성명과는 결이 달랐다. 워싱턴을 찾은 탈북민들의 의회 방문을 지원했고,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서한도 직접 보내기도 했다. 다만 한국 일부 보수층이 미셸에게 거는 과도한 기대는 조정될 필요가 있다.

미셸과 숀은 트럼프 시대 공화당 안에 있지만, MAGA의 심장부라기보다는 골드워터와 레이건을 지나온 정통 보수 계열에 가깝다. 트럼프와 가깝지만, 핵심 충성파 그룹은 아니다. 미셸은 반사회주의 성향의 모임에 참여했지만, 동시에 중도 보수 성향의 의원 그룹에도 속했다.

한국에서 누군가 미셸을 자기 진영의 대리인처럼 상상한다면, 그것은 오독일 수 있다.

미셸 지명자의 강점은 다른 데 있다. 그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다. 국무부의 오래된 매뉴얼 안에서만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가 직접 신뢰를 보낸 정치인이고, 의회와 당 조직의 언어를 안다. 여기에 남편 숀의 RNC 네트워크가 더해진다. 서울 대사관과 워싱턴 권력 핵심부 사이의 거리가, 다른 대사들보다 짧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RNC 집행위원회에 앉아 있는 남편의 존재는 미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통로를 열어준다. 물론 이 배경이 그를 자동으로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주한 미국대사’로 만들진 않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을 높이는 조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은 스틸 지명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어린시절 가족 사진이다. 그는 해당 게시물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적었다. 페이스북 캡처)

한국어를 하고, 한국 정서를 알고, 실향민 자녀 출신 대사라는 점은 매력적일 수 있다. 한미 관계가 거칠어질 때 한국어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대사는 그 자체로 공공외교의 자산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미북 협상의 뒷자리로 밀릴 때, 실향민의 딸이라는 배경은 작지만 의미 있는 닻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외교는 움직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한미동맹을 가치보다 비용의 언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관세, 방위비, 투자 요구. 미셸이 아무리 한국을 이해해도 대사는 대통령의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것보다 더 차가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수도 있다.

남편 숀을 둘러싼 중국 관련 논란도 부담이다. 과거 중국 정부와 군 관련 인사들이 공화당 인맥에 접근했다는 보도에서 숀의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다. 숀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물론 미셸은 의회에서 중국 공산당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지만, 이 문제가 인준 청문회에서 다시 불려 나올 수 있다.

워싱턴의 청문회장은 오래된 질문을 그냥 묻어두는 곳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향후 어떤 반응을 보이고, 미셸이 이 허들을 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도 관심사)

미셸 스틸 지명엔 미국 보수정치의 긴 흐름, 한인 이민자의 상승 서사, 북한을 떠나온 가족의 기억, 트럼프 시대 동맹 외교의 불안이 여러 겹으로 접혀 있다. 관건은 미셸 지명자가 남편 숀의 그늘과 트럼프의 거래식 외교 사이에서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다. 대사는 관세와 방위비, 투자 요구를 전달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모든 외교가 숫자와 청구서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힌트는 보인다. 지난 4월 초 서울을 찾은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이 탈북민들을 별도로 만났고, 그 만남을 방한 중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로 꼽아 X에 공개적으로 올렸었다. 미셸도 비슷한 행보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실향민의 딸이 대사관저에 탈북민들을 초청해 만나고 격려하는 장면. 그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장면이 서울의 외교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미셸의 북한 인권 행보는 대북 유화 기조를 보이는 이재명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탈북민 문제와 북한 인권이 다시 미국 대사관의 언어로 전면에 올라오면, 외교부도 중간에서 난처한 조율을 해야 할지 모른다. (정동영 장관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미셸의 시험은 결국 이 두 질문 사이에 있다. 트럼프의 청구서를 전달해야 하는 자리에서, 한미 관계를 흔들림 없이 관리하면서 부모가 떠나온 땅을 향해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아마도 그 균형이 그를 평범한 정치 임명 대사로 남길지, 기억에 남을 주한 미국대사로 만들지를 가를 것이다

(William Kim/Journalist in Washington DC)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낸 5·16 군사혁명 (2)”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4월 23, 2026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 5월 18일 육사생도의 5.16지지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규 소령, 박정희 소장, 차지철 대위. ⓒ 연합뉴스>

혁명의 설계자 김종필과 지도자 박정희, 1961년 2월 ‘혁명결의’

그 무렵 김종필을 비롯한 군부 일각에선 혁명에 대한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1961년 2월 19일, 2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를 찾아가 “이제는 혁명해야 겠다”고 제안한다. 이날 박정희와 김종필은 동원 가능한 병력을 확인하고 ‘혁명의 결의’를 맺었다.

김종필은 이후 거사 날까지 도서관을 드나들며 프랑스 혁명, 볼셰비키 혁명, 터키 케말 파샤 혁명, 영국의 산업혁명, 이집트 혁명 등 전 세계 혁명사를 연구했다고 한다.

“꽃샘추위가 매서운 1961년 초봄 나는 분주해졌다. 박정희 소장과 대구에서 혁명 결의(2월 19일)를 한 뒤였다. 혁명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출동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전의 정군(整軍)운동은 육군본부 동료들로 충분했다. 이젠 혁명이다. 실병력이 있어야 했다. 그들을 이끄는 야전장교를 포섭해야 했다. 나는 한강 이북, 박 소장은 한강 이남을 맡았다.”

– 김종필 증언록 1권, 42쪽. 

김종필이 처음 점 찍어둔 거사 날짜는 4·19 혁명 1주기 날이었다. 학생 시위로 거리가 시끄러운 틈을 타 군이 개시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군인들이 예상했던 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계획은 두 번이나 미뤄졌다.

“첫 번째 4월 19일 계획은 4·19 기념 1주년 행사를 맞아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다. 시위가 벌어지면 진압군으로 투입되는 혁명 주체세력이 궐기군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었다. 기대했던 데모는 일어나지 않았다.

군부 궐기는 자동적으로 취소됐다. 나는 발상과 접근 자세를 바꾸었다. 상황이 조성돼야 거병하는 소극적 방식은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역사는 스스로 써야 하고 미래는 만들어가야 한다.

이튿날 대구의 박정희 소장을 찾아가 폭동 진압 계획에 편승하려는 소극적 계획을 수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주변 조건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혁명군을 편성하기로 했다.”

– 김종필 증언록 1권, 61~62쪽. 

JP가 정한 D데이 H아워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쿠데타 지도자인 박정희와 설계자 김종필 그리고 제1공수단, 해병1여단, 6군단 30사단·33사단, 특수부대가 작전에 동참했다. 쿠데타가 일어날 거란 소문이 군 외부로 유출되는 일도 있었지만, 김종필은 두렵거나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군과 정부가 무관심하고 나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면 총리는 재임기간 수 차례 쿠데타 관련 첩보를 입수했으며,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사실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장 참모총장은 그럴리 없다며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결과적으로 안이한 대처였다.

5월 15일 늦은 오후, 김종필은 6개 공약이 담긴 혁명 발표문을 작성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군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5월 15일 밤 11시 반, 박정희는 신당동 집을 나와 서울 영등포의 6관구 사령부로 향했다. 거사를 시작한 것이다. 쿠데타군인 해병대와 공수단은 헌병대와 한차례 교전 끝에 한강교를 돌파한다. 그 사이 쿠데타 소식을 접한 장면 총리는 머물던 반도호텔을 떠나 혜화동의 카르멜 수녀원으로 피신했다.

군부가 장악한 남산 KBS 라디오방송국 새벽 5시 혁명 취지문에 이어 오전 9시 장도영 참모총장 명의로 계엄포고문이 전국에 방송됐다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

일, 본 군사혁명위원회는 4294년 5월 16일 오전 7시를 기해 장면 정부로부터 일절의 정권을 인수한다. 

이, 참의원·민의원 및 지방의회는 4294년 5월 16일 오후 8시를 기해 해산한다. 단, 사무요원은 존속한다. 

삼, 일절의 정당 및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사, 장면 정부의 국무위원 및 정부위원은 체포한다. 

오, 국가기구의 일절은 혁명위원회가 이를 정상적으로 집행한다. 

육, 모든 기관 및 시설의 운영은 정상화하고 여하한 폭행 행위도 이를 엄단한다.

– 1961년 5월 17일 자 <동아일보> ‘정권 인수·국회 해산

12·12 군사 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혁명에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1961년 5월16일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혁명을 일으킨 주역이 박정희 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안심이 됐다. 소대장 시절 사단장으로 모셨던 그분의 인품과 능력을 믿었다.

결코 경거망동할 인물이 아닌 데다 누구보다도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분이어서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혁명을 주도했으리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서울대 문리대에서 교관을 하고 있는 전두환 대위와 연락을 취했다. 우리 두 사람은 혁명의 성격을 이야기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중략) 1961년 5월 18일에 있었던 육사 생도 및 장교단의 혁명지지 시가행진은 언론에 크게 보도돼 혁명의 성공을 기정사실로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날 아침 사관생도 800여 명은 교수 훈육관들과 함께 동대문에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 노태우 회고록 <국가, 민주화 나의 운명> 상권, 116~118쪽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낸 5·16 군사혁명 (1)”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4월 22, 20264월 22, 2026

JP “구질서 붕괴시키고 신 질서 만들었다”

박정희· 장도영 본 윤보선 “올 것이 왔구나”

〈4·19 이후 국내 정세 혼란기 이어져〉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하야 후 1960년 여름, 제2공화국 시대가 열렸다. 8월 12일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고 19일 장면 초대국무총리가 임명됐다. 4·19 이후 거리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시위가 열렸다. 당시 ‘데모하지 말라는 데모를 해야 한다’ 라는 식의 우스갯소리도 세간에 전해졌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치적 문제외에도 국민의 삶은 초근 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는 등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고, 안보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 권력을 잡은 민주당 정권은 신파·구파로 나뉘어 헤게모니 싸움에 치중했다. 1956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 경선 때부터 시작된 신·구파 간 경쟁은 선거 승리 이후 더욱 격화했다.

5대 국회 개원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86명의 구파 의원이 모여 ‘구파동지회’라는 원내교섭단체를 따로 꾸려 등록하기에 이른다. 다음 해 2월 구파는 분당해 나와 신민당을 창당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장면 내각은 정책 추진 동력을 잃었다.

JP는 “민주당 정권은 정쟁과 누습(陋習), 극도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민주당 장면 내각을 ‘우유부단함의 극치’라 평가절하했다.

당시 군인 신분의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장면 총리의 경우 군 통수권자 로서의 권위나 국민들이 느끼는 친밀감에 있어 이승만 대통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편”이었으며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무성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우리 기대와 포부와는 달리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시국은 날로 혼란스러워졌다. 제2공화국 잉태기라 할 수 있는 과도 정권하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사회정화와 질서 확립 운동으로 한동안 사회는 평온했다.

하지만 제2공화국이 출범하자 지난날 독재 치하에서 억압됐던 욕구와 가치들이 끊임없이 표출되며 사회적 혼란이 갈수록 심해졌다.

반면 민주당 정권은 신구파분쟁 노장파와 소장파 대립 등 당내 파벌 싸움에 휘말려 표류했다. 그로 인해 4·19 혁명을 진전시키는 실질적 개혁 조치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었다. 

민주당 정권이 경제개발제일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기는 침체하고 국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당시 자료를 보면 물가는 38% 오르고 실업률은 23.7% 달했으며 경제성장률은 인구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2.1%로까지 떨어졌으니, 국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날로 성해지고 있었다.

9개월밖에 안 되는 제2공화국 기간 동안 거리 시위가 2000건에 연인원 100만 명에 달했으니, 데모만능주의란 말 그대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기였다.

사회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민주당 정권은 9개월의 짧은 집권기간 3차례나 전면적 개각을 단행해야 할 만큼 정국의 혼란상을 드러내며 표류하다 결국 5.16 군사 쿠데타를 맞게 됐다.”

– 이기택 회고록 <우행, 내 길을 걷다>, 112~113쪽

“자유를 굳게 지켜라!”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오렌지 카운티 지회 창립식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3월 30, 20263월 30, 2026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O.C 지회 창립식>

26일 오후 2시 서울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주최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탄신 151주년 기념식을 개최되었다. 정동제일교회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장로로 있던 교회다

이번 행사의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강조된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중요성을 되짚으며, 오늘날 사회에서도 그 정신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유와 인권, 법치주의에 기반한 국가 운영이 지속 가능한 평화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 행사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 매국노들의 아버지라고 비판한 이재명이 축하화환을 보내와 눈길을 끌었다.

26일 오전 11시에 로스앤젤레스와 오렌지 카운티에서도 이승만 대통령 탄신 151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특별히 이승만대통령 탄신 151주년 맞이하며, 새롭게 태동하게 된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오렌지 카운티 지회(조선환 회장) 창립식이 부에나 팍 소재 갈보리 선교교회(심상은 목사)에서 있었다.

이 날 행사는 1부에 감사예배는 뉴욕에 거주하는 미주총회장인 김명옥 목사의 설교와 6.25 전쟁 당시 전쟁 고아들을 보살폈던 위트컴 장군을 기념하는 위트컴 여성 합창단의 축하 찬양과 미주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성원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취임사를 하는 조선환 회장>

미주 여성코럴(오성애 지휘자)의 찬양으로 시작한 2부 창립식에서 조선환 초대 회장은 취임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교육의 부재성에 대한 문제점으로 전교조의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매우 안타까우며, 오렌지 카운티 지회 사업의 중점을 미주 교민 2세대에게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신에 대한 전파와 교육에 두겠다’고 했다.

<임명패를 받고 있는 노명수 이사장>

노명수 이사장은 ‘현재 좌파 정권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손상되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 마음이 아프며, 이승만 대통령이 말씀하신 자유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세워 나가는 지회로 바르게 설수 있는 단체가 되도록 노력을 하겠다’ 했다.

창립 축사는 프레드 정 플러턴 시장과 조이스 안 부에나 팍 시장을 포함하여 LA지회의 박요한 회장, 샌디에이고 지회의 임천빈 고문과 국가원로회의 미서부지부 김향로 상임대표등의 인사들이 함께 하였다.

조이스 안 부에나 팍 시장은 ‘나는 1975년에 이민을 와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오늘 시청한 동영상이 좋은 교육 자료가 될 것 같은데, 앞으로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교육적인 영상이 지역내에 많이 알려 졌으면 좋겠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최대한 협력을 할 것입니다’ 라 했다.

특별 순서로 금번 로스앤젤레스 26지구 주 상원으로 출마를 선언한 샘 신 목사와 오렌지 카운티 판사로 출마한 조 안 후보의 정견 발표와 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의 인도로 한인정치인들의 당선을 위한 기도와 갈보리선교교회 심상은 목사의 폐회기도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창립식이 끝난 후 부이사장 정영득 목사는 ‘현재 보수 단체들의 사회 일반 단체화 되어 가는 것이 우려가 되는데, 오렌지 카운티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는 보수 애국단체로서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라고 했다.

<미주 총회장 김명옥 목사><대표기도 오렌지카운티 장로협의회장 본회 김영수 부회장><미주여성코럴 합창단/지휘 본회 오성애 이사><위트컴 여성합창단/지휘 김상기 목사><조이스안 부에나팍시장><이승만대통령에 대한 강의 JAMA 명예대표 강순영목사>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오렌지카운티(O.C.) 창립 발기인대회 /이승만의 정신을 다시 확립하자!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2월 21, 20263월 30, 2026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극도의 혼란에 처하고 있다. 12.3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이재명 좌파정권의 소용돌이로 말미암아, 지난 2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죄 1심 판결이 무기징역으로 판결이 남에, 한국은 물론 미주교민사회에도 적잖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대한민국이 제대로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의 확립이 해결이 될 수 있다. 해방 후 좌우 진영의 대립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정신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였기에 건국 후 80여년간의 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부에나 팍에 소재한 더블트리 호텔에서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오렌지카운티(O.C.)창립을 위한 발기인대회가 25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조선환 회장 인사말>

이 날 발기인대회는 새로이 창립되는 단체의 정관채택과 초대회장과 이사진, 임원진들을 선출에 이어, 월드쉐어 USA대표 강태광 목사의 기도 인도로 한국과 미국을 위해,이 단체가 올바른 이승만 정신으로 바르게 세워지길 위해, 2026년 11월에 있게 될 미 선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를 선언한 체 안 후보의 당선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며 순서를 마쳤다.

<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

이 날 행사에 참석자 가운데, 6.25전쟁 시 미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은 채,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고인이 된 후 유골이 부산 UN군 묘지에 안장된  위트컴 장군 기념회 관계자들이 함께 했는데,위트컴 재단에 소장되어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및 기록물을 제공하겠다 했다.

<공화당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 체 안 후보 한인선거대책본부장 에스더 장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하게 된 체 안 후보의 한인선거대책 본부장인 에스더 장로는 현재 민주당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공교육문제와 주택문제 등을 해결할 체 안 후보를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 새로이 얼바인 시장으로 출마를 선언한 강석희 전 의원은 “오렌지 카운티에 평소에 존경하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새로이 우리 지역에 만들어 지는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이번 얼바인 시장으로 출마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새로이 출범하게 될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O.C.)의 출발은 3월 26일 이승만대통령 탄신일을 기념하며, 창립을 하기로 했다.

<초대 이사장 노명수 장로>

초대 회장은 재미 이북오도민 중앙회의 회장과 이사장을 겸임하였으며, 현재 일천만이사가족위원회 LA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선환 장로가 임명되었으며, 초대 이사장은 풀러튼 시에 소재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위원장으로 수고한 노명수 장로가 임명되었으며, 부이사장 정영득 목사, 이사진은 김영수 장로(O.C. 장로협의회 회장),이득표 장로(남가주한인장로회 직전회장),이창건 장로(LA 북부한인회 초대 회장),안영대 회장(오렌지카운티 증경회장),오성애 권사(남가주한인음악회협회장),박남수 장로,전창백 대표,김양길 대표(라구나우즈)가 임명되었다.

<오렌지카운티 장로협의회장 김영수 이사>

이 단체의 사업을 전담할 사무총장은 김영구 목사가 임명되었다. (AKUS 한미연합회 LA 회장)

초대회장으로 추대된 조선환 장로는 인사말에서 “내 나이에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을 오렌지 카운티에 굳게 세우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초대 이사장 노명수 장로는 “6.25 전쟁 기념탑 건립에 이어 6.25전쟁을 이겨 내신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하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했다.

새로이 출범하게 되는 단체의 사업을 이끌어 갈 김영구 목사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이름에 맞게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정신을 바르게 전파하며,올 한해 오렌지카운티의 소재한 도서관에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책자 및 소개를 비치할수 있도록 기도하며 일을 하겠다”라고 했다.

현재 이승만대통령을 기념하는 단체는,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김남수 목사),재단법인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김황식 전 총리:이승만대통령기념박물관 건립),이승만기념재단, 우남넥트워크 (신철식,황준석 공동대표),이승만숭모회(하와이:허상기)등 여러 단체가 소재하고 있다.

현재 좌파정권에 무너져 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 정신이 바르게 전파되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꽃 피워 지기를 소망해 본다.

<부 이사장 정영득 목사>

<박남수 이사와 박세헌 목사>
<기도하는 이창건 이사,김양길 이사,뒷편 오성애 이사,이득표 이사,청년대표 죠셉 최>
<얼바인 시장으로 출마하게 될 강석희 전 의원>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회장단 모임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2월 19, 20262월 19, 2026

2월 19일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에 대한 1심 판결이 무기징역형으로 판결되었다.이미 기울어진 한국의 좌파 사법부의 판단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계속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2월 18일 한인타운에서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2026년 새로운 임원진들의 선정과 사업에 대한 회장단 모임이 있었다. 기존 임원들에 이어 새로이 영입된 고문 이하성 박사, 부회장으로 임명된 김영구목사(행사),김태열 부회장 (재무),장선희 부회장(교제와 친교),테레사 이 부회장(차세대),아이린 김 부회장(홍보)이 선출되었다.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재권 회장>

현재 이재권 회장과 지미 정 이사장과 전년도 고문진과 이사진은 그대로 유임이 되었다.

2026년 미주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사업은 5.16 군사혁명 기념식과 서거와 탄신 기념행사외에, 박정희대통령의 구국 정신으로 단행된 유신 헌법에 대한 수호와,매년 진행을 하고있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탐방과 남가주의 애국보수단체와 연계한 사업을 진행할 것인데,앞으로 모든 박정희대통령 기념행사때 국민교육헌장을 반드시 낭독한다고 한다.

2026년에 가장 중점으로 두고있는 사업으로 현재 세계 곳곳의 자리잡고 있는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의와 협력하여 ‘해외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총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책정을 하였다.

3월 7일 새로운 임원진들의 임명과 2026년 새로운 사업 발표와 새로이 수정된 정관 통과를 위한 임시총회를 한인회관에서 갖게 될 예정이라 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선고 D-1…역사적 판결에 쏠린 눈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2월 17, 20262월 17, 2026

내란특검, 사형 구형 속 양형 초미 관심사

통상 관행과 다른 재판 진행…”예단 불가”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3차 공판 지상 출석…처음 공개 석상에 모습 드러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법원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양형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오는 19일 오후 3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진행한다.

조은석 특별검사팀(내란특검)은 지난달 14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다. 재판부는 유죄를 전제로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거나, 무죄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내란죄 유죄면 무기금고 이상…사형은 신중론

법조계에서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소 무기금고 이상의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실제로 구형과 같은 사형이 선고될지를 두고는 신중한 반응이 많다.

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계엄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진 사안은 아니었고 과거 전직 대통령 사건에서도 1심과 상급심 판단이 달랐던 전례 등을 고려하면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사안의 상징성과 중대성을 볼 때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사형 선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면서도 “다만 현실적으로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선고와 집행은 별개의 문제” 라고 짚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 결과 징역 7년이 선고된 후 미소를 짓고 있다>

◆ ‘비상계엄=내란’ 판단 잇따라…낮아진 무죄 가능성

무죄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12·3 비상계엄을 형법상 폭동에 해당하는 내란 행위로 본 관련 사건 1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도 “비상계엄 선포와 군·경 동원,국회·선관위 통제 조치가 폭동에 해당해 내란 행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법관의 독립성은 헌법상 보장돼 있지만, 같거나 밀접하게 연결된 사실관계에 이미 여러 재판부가 일정한 법리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이를 정면으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측, 공소기각 주장

윤 전 대통령 측은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의 수사권 문제와 공소장 변경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재판 과정 내내 공소기각을 주장해왔다. 다른 사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반복됐지만 받아들여진 사례는 없다.

윤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지난달 16일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와 관련된 범죄에 해당해, 공수처의 수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한 전 총리 재판에서는 혐의가 선택적 병합 형태로 추가되면서 공소장 변경이 이뤄졌다며 변호인들이 문제 삼았지만 재판부는 범행의 주체· 시기· 장소· 구체적 행위가 동일해 공소장 변경은 적법하다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관련 사건에서 비슷한 절차적 주장이 반복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재판부가 공소기각보다는 실체 판단에 무게를 두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지난해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하기 전 언론 공개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다만 일각에서는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 운영방식이나 판단이 통상적인 관행과 다른 만큼 최종 선고를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예는 당시가 처음이었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달 14일 1년 가까이 이어진 변론을 마무리하며 특검과 피고인 측을 향해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증거에 따라 판결할 것” 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12·3 비상계엄의 법적 성격과 윤 전 대통령의 형사 책임을 가를 1심 선고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국 시사

황교안 “김일성 장학생· 주사파· 친 중 세력 결탁해 대한민국에 혼돈 야기”/ “김일성 장학생들이 재판을 장악하는가? 체제전쟁이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1월 16, 20251월 16, 2025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KNN NEWS 유튜브 캡쳐)>

황교안 갑자기 등장한 기자회견 “김일성 장학생·주사파…” [현장영상] / 채널A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긴급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날 부정선거와 특별히 김일성 장학금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김일성 장학생·주사파·친중 세력 결탁해 혼돈 야기 부정선거로 192석 도둑질

“국민 여러분 현재 대한민국은 총성 없는 제2의 6·25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체제 전쟁 중이라는 말씀을 제가 그동안 여러 차례 드렸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가느냐,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로 가느냐 그 기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70여 년 전에는 김일성이 탱크를 앞세워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왔고,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일사 후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민족 반역자가 몇 십 년간 공들여서 심어 놓은 김일성 장학생들과 주사파, 그리고 중국 통일전선공작부 사주를 받는 친 중 세력이 결탁해서 부정선거와 내란 조장으로 대한민국을 극심한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민주당이 일으킨 반란에 경찰과 공수처, 그리고 법원의 일부까지 가담해서 큰 혼란에 빠져든 상태이며, 여기에 일부 언론까지 동조하고 있는 극심한 위기 상황입니다. 이들 반국가세력들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내란 수괴라는 칼을 씌워서 오랏줄로 꽁꽁 묶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역의 길입니다” 했다.

<1976년 귀순한 고정간첩 이용규>

김일성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는 대남침투 공작원으로 선발 돼 일곱 번째 남파됐다가 1976년 귀순한 거물 간첩 김용규 증언에 의하여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그가 쓴 대남공작 비밀자료집에서  “김일성 교시로, 김일성 장학금으로 서울에 고시원 10군데 만들어, 한 군데서 1년 평균 6명씩, 10곳에서 60명씩 사법고시 합격하여1980년경~2010년경까지(30년 동안) 서울에서만 1,800명 합격자가 나왔다.“라고 했다.

김용규의 증언에 의하면,  “남조선에서는 고시에 합격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지금부터 머리가 좋고 영악한 아이는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준비만을 시켜라. 10명을 준비시켜 1명만 합격해도 목적은 달성된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에서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한다” 라는 김일성 교시에 대해서도 증언을 하였다.이에 따라 서울에 고시원 10곳을 만들어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최소 300명, 최대 1800명에게 장학금을 줬다는 것이다.

이어 “김일성은 또한 ‘국회에, 교회에 침투하라’는 교시도 내렸다. “남조선에서 가장 비집고 들어가기 좋은 장소는 교회다. 교회에는 이력서나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가 있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헌금만 꾸준히 내면 누구라도 신임을 받을 수가 있다” 라 했다.

황장엽과 면담을 했던 이용희 가천대 교수는 “김정일이 대남 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교회이므로 대형 교회 10곳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달 했다” 고  면담 결과를 밝혔는데, 교세를 10분의 1로 줄이는 대표적인 전략이 ‘10대 대형 교회 무너 뜨리기’ 라고 했다.

북한의 장학금 제도에 대해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 교수 윤영순이 2020년 3월 2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장학금제도” 라는 논문에 의하면, 《국가는 모든 학교 들에서 수업료를 없애여 학생들을 무료로 공부 시키고 있으며 대학 및 전문학교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까지 주고 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29권 546페지)

김정일장학금제도는 주체79(1990)년 10월에 제정되어 주체80(1991)년부터 실시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김정일장학금은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우리 나라 유학생들 가운데서 모든 학과목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에게 준다.

장학금은 일반장학금, 특별장학금 뿐 아니라 맹아 및 롱아 학교의 학생들과 외국어학원 및 체육학원, 등대섬에서 뭍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지불되는 기타 장학금이 있다.

우리 나라 장학금에는 또한 재일조선인 자녀들이 민족교육을 받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지불하는 장학금이 있다. 이것은 교육사업비에서 교육원조비와 함께 지출된다 라고 그의 논문에 수록하고 있다.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한 도꾜 조선 중고급학교 축구소조와 요꼬하마 조선 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 학생들을 사랑의 한 품에 안아 주시는 김일성주석님(1972년 8월 18일)/사진 북한 조선신보>

논문에 의하면 다른 나라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특별히 재일조선인 즉 조총련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하는데,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했던 최수영씨에 의하면 1980년대 북한, 남한에 조총련 통해서 김일성 장학금 2조원 이상 살포가 되었다고 한다.

<2014년 9월 27일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 도쿄 행사에서 도쿄 한국학교 학생들이 합창과 율동 등 공연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2017년 연합뉴스 조준형 기자의 “北 김일성, 조총련에 27년간 교육비 3천500억 송금” 이란 기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북한이 재일동포 2, 3세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교육전쟁’을 벌인 정황이 11일 공개된 1986년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당시 북한 김일성 정권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을 통한 재일동포 교육사업에 약 30년에 걸쳐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수준의 돈을 송금, 학교 설립 등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괴, 조총련에 송금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제목의 외무부(현 외교부) 영사교민국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조선총련에 1957년부터 1984년까지 약 350억 엔(3천 557억 원)을 송금했다.

1950년 9월 김일성이 조선총련 조국 방문단에게 교육 원조금과 장학금을 지원할 것을 약속한 이래 북한은 1957년 2억2천160만 엔을 시작으로 1967년 10억 엔을 초과했고 가장 많았던 1974년 37억1천178억 엔을 조선총련에 쏟아 부었다” 라고 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북한의 김일성 장학금은 조총련을 통하여 한국 사회에 침투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자유민주당의 고영주 변호사는 2023.10.04.(수) 조선일보 35면 사설면과 문화일보 31면 사설면에 김일성 장학금 수혜자들에 대해 수록하고 있다.

이번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될 헌법재판관 중 한명인 정계선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 심리를 위한 변론 기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헌법재판소에 기피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각하가 된 상태인데 정계선은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했던 자로서 지난 2일 취임한 정 재판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미선 헌법재판관도 같은 연구회 출신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추가 임명을 압박하고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는  노무현 정부 때 전성시대를 맞았다. 당시 노무현은 대법관으로 박시환 판사를, 강금실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당시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이광범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등 사법부 요직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대거 발탁됐다. 이때 우리법 연구회의 회원 수가 120명이 넘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을 비롯해 강금실 전 법무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명수 전 대법원장,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 이정렬 전 판사 등이 대표적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때 노무현에게 강금실을 천거한 사람이 강금실의 사법연수원 1기수 선배인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우리법연구회는 소속된 판사나 검사의 활동 내역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특히 회원 구성이 비밀스럽게 유지되면서 외부의 감시를 피하고, 특정 세력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높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을 내린 이순형 판사는 전북 무주 출신으로 1996년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도 우리법 연구회 소속 법조인으로 활동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진보적 법조인들이 김일성 장학금의 수혜자 들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김일성 유훈에 의하여 실행된 김일성 장학금의 실체들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보인다.

 

미주 교민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외침의 소리 시작되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1월 12, 20251월 12, 2025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을 지지하는 미주지역의 애국 교민들과 단체들이,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에 대한 반대 집회가 1월 11일을 기점으로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뉴욕 지역의 애국교민들>

미 동부 뉴욕 레너드 광장(Leonard Square)에서 열렸던 집회는 뉴욕 예비역군인연합회이 주최한 이 날 집회에는 6.25참전유공자회, 뉴욕장교연합회, 뉴욕베트남참전유공자전우회를 비롯해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전우회, 특전사전우회 등 군 관련 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AKUS 한미연합회 뉴욕 지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뉴욕한인학부모회, 뉴욕구국동지연합회, 이승만아카데미, 국제탈북민인권협회 등 한인 단체들이 함께 했다.

<위싱턴 DC 집회>

워싱턴 D.C 에서도 같은 날 집회가 열렸는데, 지역에 내린 폭설과 날씨 관계로 오후 3시 워싱턴 D.C설악가든에서 AKUS 한미연합회 워싱톤 DC지회(회장 오인환)의 주최로 열린 탄핵반대 집회는 현 대한민민국의 사태에 따른 시국선언과 함께 진행 되었다.

이어서 같은 날 텍사스에서는 AKUS 한미연합회 휴스턴지회 (회장 정정자)가 주최한 집회는 휴스턴 한인 밀집지역에서 100여명의 교민들이 함께 동참을 하였다.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집회 모습>

미서부 남가주 지역에서 열린 집회는 로스엔젤레스 지역과 오렌지 카운티 지역에서 1월 11일 오후 2시에 대대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로스엔젤레스 지역은 이번 집회가 4번째 집회로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LA지역 한인타운에 소재한 ‘웨스턴과 윌셔’에 있는 태극기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역시 남가주의 오렌지 카운티 지역 집회는 ‘부에나 팍’ 한인 밀집지역인 비치와 멜번 스트릿이 만나는 시온마켓 파킷장에서 정치학 박사인 마이클 심 박사와 유수연 교육위원이 주축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O.C 지역에서 열린 두번째 집회로서 매주 토요일 집회가 진행될 것이라 했다.

<집회 사진/ 미 동부 뉴욕 지역>

<워싱턴 DC지역>

<텍사스 휴스턴>

<미 서부 로스엔젤레스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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