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구질서 붕괴시키고 신 질서 만들었다”
박정희· 장도영 본 윤보선 “올 것이 왔구나”

〈4·19 이후 국내 정세 혼란기 이어져〉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하야 후 1960년 여름, 제2공화국 시대가 열렸다. 8월 12일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고 19일 장면 초대국무총리가 임명됐다. 4·19 이후 거리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시위가 열렸다. 당시 ‘데모하지 말라는 데모를 해야 한다’ 라는 식의 우스갯소리도 세간에 전해졌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치적 문제외에도 국민의 삶은 초근 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는 등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고, 안보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 권력을 잡은 민주당 정권은 신파·구파로 나뉘어 헤게모니 싸움에 치중했다. 1956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 경선 때부터 시작된 신·구파 간 경쟁은 선거 승리 이후 더욱 격화했다.
5대 국회 개원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86명의 구파 의원이 모여 ‘구파동지회’라는 원내교섭단체를 따로 꾸려 등록하기에 이른다. 다음 해 2월 구파는 분당해 나와 신민당을 창당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장면 내각은 정책 추진 동력을 잃었다.
JP는 “민주당 정권은 정쟁과 누습(陋習), 극도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민주당 장면 내각을 ‘우유부단함의 극치’라 평가절하했다.
당시 군인 신분의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장면 총리의 경우 군 통수권자 로서의 권위나 국민들이 느끼는 친밀감에 있어 이승만 대통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편”이었으며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무성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우리 기대와 포부와는 달리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시국은 날로 혼란스러워졌다. 제2공화국 잉태기라 할 수 있는 과도 정권하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사회정화와 질서 확립 운동으로 한동안 사회는 평온했다.
하지만 제2공화국이 출범하자 지난날 독재 치하에서 억압됐던 욕구와 가치들이 끊임없이 표출되며 사회적 혼란이 갈수록 심해졌다.
반면 민주당 정권은 신구파분쟁 노장파와 소장파 대립 등 당내 파벌 싸움에 휘말려 표류했다. 그로 인해 4·19 혁명을 진전시키는 실질적 개혁 조치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었다.
민주당 정권이 경제개발제일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기는 침체하고 국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당시 자료를 보면 물가는 38% 오르고 실업률은 23.7% 달했으며 경제성장률은 인구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2.1%로까지 떨어졌으니, 국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날로 성해지고 있었다.
9개월밖에 안 되는 제2공화국 기간 동안 거리 시위가 2000건에 연인원 100만 명에 달했으니, 데모만능주의란 말 그대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기였다.
사회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민주당 정권은 9개월의 짧은 집권기간 3차례나 전면적 개각을 단행해야 할 만큼 정국의 혼란상을 드러내며 표류하다 결국 5.16 군사 쿠데타를 맞게 됐다.”
– 이기택 회고록 <우행, 내 길을 걷다>, 112~113쪽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Latest posts by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see all)
-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낸 5·16 군사혁명 (2)” - 4월 23, 2026
-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낸 5·16 군사혁명 (1)” - 4월 22, 2026
- “자유를 굳게 지켜라!”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오렌지 카운티 지회 창립식 - 3월 30,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