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의 5월 18일은 예년에 비해선 꽤나 조용히 지나간 편이다. 정권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민심이 변했다.
지금의 민심은 5.18유공자라는 사람들이 받는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엄청난 특혜에 대해 박탈감과 함께 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고, 해마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민주화 유공자수의 명단을 밝히라며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 민심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하기엔 그래도 씁쓸한 부분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애초에 그 과정들이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43년이 지난 오늘 에서야 비틀린 역사의 수레바퀴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려는 아우성이 터지고 있지만 이미 그 카르텔들은 너무 촘촘하고 뿌리가 깊어져 버렸다.
‘1980년 5월 18일 그 날’
그 날을 성스러운 민주화운동의 날이라며 스스로를 성역화 시키면서 자신들만의 엄청난 카르텔을 형성하여 혈세에 빨대를 꽂고 배를 두드리는 무리들의 그 뒤안길엔 맥없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명령에 따라 진압군이란 이름으로 반대편에 그들과 마주친 꽃다운 젊음들이 있었다.
그들도 소중한 이 나라의 젊은이였으며 누군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천금 같은 자식이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이었으며 토끼 같은 아이들의 아빠였다.
시민군이란 이름의 시위대가 돌진하여 몰았던 버스의 바퀴에 깔러 두개골이 두부처럼 뭉개져 사망하고 팔다리가 부러져 죽어도 이들을 위한 진혼가를 불러주고, 이들을 기억하라며 그 짧은 삶을 애잔하게 그려주는 만화나 영화, 소설조차 없다.
그의 가족들은 특혜는 고사하고 아들이 그 곳에서 전사했다는 말도 한 마디 못한 채 피 멍든 가슴을 움켜진 채 속으로만, 가슴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살아야만 했다.
나는 5월 18일이 되면 모두가 기억하라고 아우성치는 성역화되어 이미 특권층이 되어버린 그들보다 그 뒤안길에서 ‘나 여기서 죽었노라!’ 한 마디 말할 수도 없고 말해 주는 이도 없는 진압군이었던 그 젊음들을 기억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제는 그 날 그 아픔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 그들의 삶을 그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날 푸른 군복의 그들도 나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명령에 따른 이 나라의 꽃다운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기억되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그들을 위한 진혼곡을 불러주어야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그들 에게도 이루고 싶은 부푼 젊은 꿈이 있었다.
-위드코리아 편집국-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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