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김봉학 일병 양구 ‘피의 능선’서 유해 수습
김성학 일병은 춘천전투에서 사망
▲ 지난 2011년 7월 19일 강원도 양구 월운리 수리봉에서 발굴된 고 김봉학 일병 유해의 최초 식별 당시 모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해 생이별한 형제가 73년 만에 유해로 상봉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단장 이근원)은 2011년 강원도 양구군 월운리에서 최초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고 김봉학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김봉학 일병은 1951년 9월 5일 5사단 35·36연대와 미 2사단 9연대가 북한군을 상대로 수리봉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피의 능선 전투’에서 장렬히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피의능선전투’는 5사단 35, 36연대와 미 2사단 9연대가 북한군이 탈환했던 양구군 동면 수리봉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로, 우리 군은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 고 김봉학 일병 유해의 전체 골격.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김 일병은 당시 전투 중 다량의 포탄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일병의 유해는 세 차례에 걸쳐 온전하지 않은 형태로 수습됐다. 최초로 발견된 시기는 2011년 7월19일로, 흙 속에서 머리뼈와 오른쪽 정강이뼈 등이 발견됐다.
2012년 11월15일과 2016년 10월12일 두 차례에 걸친 발굴을 통해 넙다리뼈 등 2점의 유해가 추가 수습됐다. M1카빈 소총 탄피와 수류탄 안전핀 등의 유품도 발견됐다.
동생인 김성학 일병의 유해는 전사 직후 수습돼 1960년 국립서울현충원에 먼저 안장됐지만, 형인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찾지 못해 현충원에 위패만 모셔 둔 상태였다.
김봉학 일병은 1923년 9월10일 대구광역시 서구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생계가 여의치 않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어린 나이 때부터 집안의 가내수공업을 도우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8월 친동생과 함께 입대한 뒤 이별했다. 김 일병은 국군 제5사단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동생은 국군 제8사단 소속 고 김성학 하사(현 계급 상병)로, 강원도 춘천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형제가 뒤늦게 넋이 되어 만난 사연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이들의 형제애와 고귀한 희생정신의 의미를 기리는 차원에서 한자리에 나란히 모셨다”고 설명했다.
김 일병과 김 하사의 친동생인 김성환씨는 “죽어서도 사무치게 그리워할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두 형님을 나란히 안장 할 수 있도록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고 전했다.
6·25 전사자 유가족은 전사자의 8촌까지 유전자 시료 채취로 신원 확인에 참여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000만 원이 지급된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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