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
미래 사회의 어두운 도시를 그린 SF 액션 스릴러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서기 2019년이 시대적 배경이다.
1982년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작품이며,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1968년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가 원작이다.
SF 영화에 필름 누아르 방식을 도입하여, 테크 누아르(Tech Noir)라는 새 장르를 열었다.
복제 인간이 가득하고, 우주여행은 우리가 고속버스 타고 지방 가는 것만큼이나 쉬운 미래의 사회가 고작 1년 전인 2019년이라는 게 재미있다. 놀라운 신세계는 사실 미래주의자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빨리 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무대는 미국의 로스앤젤리스, 공해가 심해 스모그가 짙고, 산성비가 자주 내린다. 거대한 빌딩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성이 상실된 도시이다.
기괴한 모양의 거대한 빌딩들에는 일본어 간판들도 눈에 띤다. 일본이 전 세계를 석권할지 모른다는 80년대 미국인들의 두려움이 언뜻 느껴지는 화면이다. 실제로 이 건물들의 모습은 일본의 어느 거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인구는 증가하여 많은 지구인들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가는 추세다. 리플리컨트라는 이름의 복제인간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인조인간과 실제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리플리컨트(복제인간)들은 비록 수명은 짧으나 인간과 똑같은 외형을 지녔고, 사고의 능력도 동일하다.
영화는 리플리컨트 일부 집단이 우주 한 편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리플리컨트 전문 수사 요원인 블레이드 러너를 호출한다. 전직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는 긴급 호출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복제인간 제조회사인 타이렐 사를 방문하여 회장의 비서인 미모의 여성 레이첼을 만나 호감을 느낀다.
리플리컨트 일당을 추적하여 사살해 나가던 릭이 위험에 빠진 순간 레이첼이 나타나 구해 준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리플리컨트 일당은 복제인간 제조 전문가와 회사 사장을 사살하고, 블레이드 러너인 릭은 다시 이들을 쫓아 나선다.
문제는 릭이 임무를 완수했을 때 그가 자기 역시 리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은 철두철미 인간이며, 오로지 사악한 리플리컨트들을 추적한다고 믿었는데, 그 정체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알고 보니 아름다운 레이철도 리플리컨트였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무한한 갈망과 또는 내가 진정으로 인간인지 아니면 한낱 복제인간인지 몰라 영원히 자신을 괴롭히는 의심이 바로 이것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암묵적 주제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자기정체성이 침식되는 순간 인간이 느끼는 절망감이 바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적 물음이다.
◊ 영화 ‘아일랜드’는 고객의 필요로 인해 복제인간이 생산되고 희생되어 폐기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복제에 대한 경고를 전달한다
고전적 누아르와 1980년대의 테크 누아르를 구분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전적 누아르의 주인공은 주로 블랙아웃의 시간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지 못하는 기억상실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적인 회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일관된 내러티브로 재구성한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은 회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자기 정체성을 상실해 갈 뿐이다.
프랑켄슈타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에 이르기까지, 괴물들이 창조주에게 던지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한 가지다.
“당신은 왜 나를 이따위로 만들었나요? 당신은 왜 나를 이처럼 불완전하고 불구로 창조했나요?” 그것은 밀턴의 실낙원의 한 구절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끌어내 달라고?”에서 유래한 동일한 모티브의 변주이다.
미혼인 방송인 사유리(41)가 일본에서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최근 아들을 출산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 비혼모’가 되었다고 응원의 목소리들이 이어진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호응이 높다. 비혼모로서 사회의 차별적 시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엄마들이 사유리의 당당한 선언에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정상 가족’이라는 공고한 편견의 틀을 흔들었다고 환호하며, 결혼을 해야 시험관 수술도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법규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산후조리원’에서 비혼을 주장하여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엄마를 예로 든 기사도 눈에 띤다. 그 방송 출연자는 아이의 아빠가 산후조리원을 찾아와 프러포즈를 했지만 결혼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사랑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 ‘비혼’과 아예 상대 없이 거의 단순 생식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비혼’ 사이에는 천 길 낭떠러지의 차이가 있다.
거기에는 자연의 거부가 있고, 인간의 근원에 자리 잡은 기계가 있다. 사회적 비혼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과 기계적 비혼을 인정한다는 것은 전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어머니에게서만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 엄청난 절망감을 한 인간에게 준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물론 그녀의 자유이지만, 나는 그녀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시초일 뿐이다.
<박정자. 주식회사 기파랑 출판사 대표>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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