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교회 회개운동]
<백만인 구령운동 (1909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에도 부흥운동이 한반도에서 수차례 지속되었다.
그 대표적인 1909년에 시작된 백만인 구령운동이다.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은 시들어 가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불길을 안타까워하면서 일련의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7년 1월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부터 6월까지 절정에 달한 후 이내 시들기 시작했다. 1908년에 접어들어 교회는 성장하면서도 1907년 영적각성운동은 현격하게 줄어들어 1909년 초에 이르러 부흥운동의 열기는 더 한층 냉각되었다.
이것을 안타까워하던 평양 장대현 교회 담임목사 길선주와 개성에서 활동하고 있던 스톡스 (M. B. Stokes) 리드(W. T. Reid) 갬블(F. K. Gamble)을 비롯한 남감리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다시 한번 평양 대부흥운동과 같은 영적각성이 이 민족가운데 일어나기를 사모하며 기도회를 가졌다.
특히 길선주 목사는 박치록 장로와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새벽기도회를 열었고, 세 명의 남감리교 선교사들은 의기투합하여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을 부으셨다.
1909년 가을에 입국한 채프먼, 로버트 학니스, 찰스 알렉산더 등 외국 부흥사들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한 전도집회는 백만인 구령운동의 열기를 한 층 북돋아주었다.
비록 목표한대로 100만명을 구원하지는 못했지만 이 땅의 민족복음화를 염원하며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평양의 대 부흥의 불길을 경험한 노블 선교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코리아 미션 필드(Korea Mission Field)에 이것은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라고 증언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널리 부흥사경회운동이 지속되어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복음주의연합공의회는 100만명 구령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고 장로교 1910년 9월 21일 제4회 로회(독노회)서 백만인구령운동을 결의하였다.
백만인구령운동 이후에도 1920-1921년 사이 김익두를 통한 부흥운동, 1932-1933년 사이 성결교부흥운동, 1950년대 부흥운동 그리고 1970년대 이후 대중전도운동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는 부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평양대부흥운동과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Δ맺음 말
한국초기 교회의 부흥운동은 회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개인의 회개가 사회의 회개로 이어졌던 것이다. 기생과 환락의 도시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꾸신 성령의 운동은 선교사들과 길선주 장로를 비롯한 성도들의 회개에서 시작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고백한대로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아무 곳에서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곳에 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 땅에 부흥을 사모하는 기도의 끊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 주여! 다시 한번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놀라운 부흥을 주옵소서! 그 때 임하셨던 성령이여 다시 이민족 가운데 임하소서!”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에 의하면 성결교단을 대표했던 부흥사 이성봉 목사는 회개의 특징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성봉 목사의 회개는 회의 차원만이 아닌 개의 차원으로 실천으로 변화되는 삶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김치선 목사
안양대학의 이은선 교수는 김치선 목사의 생애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의 눈물의 선지자라는 회개 운동의 기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치선 목사의 회개론에는 예례미야가 우상 숭배 죄를 지어 망해가던 유다 왕조를 위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민족이 먼저 자신의 죄를 서로 회개하고 지적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특히 지도자들의 회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김 목사는 회개를 설교할 때마다 개인적 죄에 대한 회개를 지적했으며 다음으로 교회와 민족에 대한 회개를 지적했으며 회개와 부흥운동을 연결시켜서 전국 28,000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 (개척)고 주장하였다.
김치선 목사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라는 호소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회개 운동을 시작하여 한국 교회에 참회의 물결이 넘치도록 고백할 때에 한국교회 새 역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의 원인은 무엇보다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 문제로 그 지도력이 교회 안팎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운영과 사업이 세속적 물량주의, 과시형 업적주의, 당파적 경쟁주의 틀안에 머물면서 세속 사회로부터 냉소적 비판을 받고 있다.
신앙적 오류의 근본 원인은 본질에서 벗어난 현대 기독교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복음에 의지하여 회개와 중생과 성화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회개는 기독교인이라면 모두가 체험하고 고백해야 할 구속의 은총의 출발이다.
‘가슴을 찢는’ 아픔이 수반된 회개라야 중생과 성화의 삶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903년 8월,하디가 원산의 토착 교인들 앞에서 하였던 ‘괴롭고 창피한'(painful and humiliating) 자백이 오늘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재현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의 교회 개혁은 회개에서 출발해야 한다.
•글쓴 이:윤사무엘 목사 (감람원선교신학원 총장), Th.D. Ph.D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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