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읍교회의 이길함 선교사>
평안남도 중화군은 평양에서 가까운 곳으로서, 북한에서는 점심을 “중화”라고 했는데 평양에서 출발해서 점심 먹을 때쯤 닿는 곳이라고 해서 이곳의 이름이 중화가 되었다고 한다.
중화읍교회는 마펫 선교사의 전도로 회심한 중화군에 살고 있던 김태로(金泰櫓)라는 사람이 평양 장대현 교회를 출석하였는데, 그의 전도로 1897년 5월 13일에 설립이 되었다. 그 후 성장하던 중화읍 교회는1911년에는 장산동(長山洞)교회와 건산교리(乾山橋里)교회를 합병하게 되었다.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는 중화읍 교회보다 1년 먼저 설립된 대기암 (大奇巖)교회였고, 그 다음에 세워진 교회는 남창(南倉)교회였다.
중화읍 교회는 초기에는 그라함 리(Graham Lee), 한국 이름 이길함(李吉咸) 선교사가 15년간 시부하다가 , 신병을 얻어 1911년에 미국으로 돌아간 후, 홀드크로프트(J. G. Holdcroft), 한국 이름 허대전(許大殿) 선교사와 중화읍이 고향이었던 채정민(蔡廷民) 목사가 함께 동역하였다.
채정민 목사는1911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3회로 졸업한 한 중화읍교회에 부임하였는데, 그 후 1918년에 중화읍교회를 사임한 후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목사였다.
중화읍 교회는1918년에 김선환(金善煥) 목사가 부임하였고, 1940년에 박응률(朴應律) 목사가 교회를 담임하였다. 박응률 목사는 신사참배가 가결된 해인 1938년에 평양 노회장으로서,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동의하였고, 그가 결의한 것이 대해 가결이 됨으로 신사참배를 하게 되었다.
박응률 목사는 8․15 해방 뒤에도 평양에서 목회하다가 공산정권에 의해 희생당했다 한다.
<북한영화 ‘비행사 길영조’ 관련 사진들>
중화읍에는 북한 공군 조종사였던 길영조(吉英祚)의 이름과 같은 중화 제1중학교가 있는데, 그는 1992년에 비행 중 사고로 원산상공에서 추락을 하게 되었는데, 비행기 추락 시 탈출하지 않고 기수를 바다 쪽으로 돌려 비행기와 함께 순직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길영조를 공화국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칭송하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만들기도 했다.
북한 정부는 길영조가 다녔던 초현고등중학교를 중화 제1중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학교 내에 그의 반신상을 세워 놓았다.
<평양과 황주 사이에 있는 중화군>
중화읍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읍 초현리였는데, 현재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중화군 중화읍으로 변경되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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