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반대로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한 출옥성도들.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김인희 전도사. 제일 왼쪽은 후일 남한지역 재건교회 운동을 이끈 최덕지 전도사. 그 옆은 이기선 목사>
*신사참배 한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던 교회들
재건교회는 해방 이후에 설립된 교파로서 장로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파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 당국이 신사참배를 강요에 의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교역자들은 모두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수자는 70여명이 넘었으며,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이기선(李基宣)목사,주기철(朱基徹)목사,손양원(孫良源)목사등 감옥에 갇혀 있던 목회자들이 ‘앞으로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교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것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생존해서 감옥에서 나온 목회자들이 한국교회 재건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만. 그런데 이 재건운동은 순조롭지 않았다.
재건운동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재건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심했지만, 새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가진 목회자들이 만든 교회를 재건교회라고 불렸다.
<차련관 교회>
재건교회의 시작은 1946년 1월 초에 철산(鐵山)의 차련관(車輦館)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설립준비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당시 차련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는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는 눈물의 집회였다.
차련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이어서, 1946년 4월에 선천 황금동에 있는 미곡창고에서 재건교회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재건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재건교회 창립예배에서 설교를 하였던 김인희(金麟熙) 전도사가 북한지역 재건교회 운동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인희 전도사는 선천 출신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다니다가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장로회 신학교가 문을 닫자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에서 15년 형을 언도받았고, 옥중에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신사참배 반대 운동가들과 함께 옥고를 겪다가 해방이 되어 감옥에서 나와 재건교회운동에 앞장섰다.
김인희 전도사의 활동을 통해 북한지역에 67개의 재건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재건교회는 북한공산정권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김인희 전도사는 1947년에 월남해서 남한지역에서 재건교회 운동을 벌이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소식이 끊어졌다.
<선천군 지도>
평안북도 선천은 교회가 강했던 곳으로 동시에 재건교회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선천에는 선천재건교회(문정상(文貞祥) 목사),동림(東林)재건교회, 학현(鶴峴)재건교회, 마산(馬山)재건교회, 노하(路下)재건교회(장득정(張得正)목사)로 다섯개의 재건교회가 설립되었다.
선천지역의 재건교회 외에도 북한지역의 재건교회는 6․25 전쟁 당시 66개였는데 신의주구역, 선천구역, 만포구역, 평양구역, 이렇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평안북도 선천역>
해방 후 남한지역의 재건교회 운동을 이끈 사람 중 최덕지(崔德智)전도사가 있는데, 재건교회는 또 다른 교파 분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기독교의 모습속에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려던 재건교회 운동이 다시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자료출처: 유관지의 북한의 잃어버린 교회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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