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항한 이름난 항구 도시로서 부산포(釜山浦)와 제물포(濟物浦)와 함께 조선의 ‘개항3항’이라 불렀다. 그런 관계로 원산에는 외국의 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왔고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고, 1945년 해방 당시 약 15만 명 인구 중 35%가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이었다.
원산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경남도로 알고 있지만, 북한은 1946년 9월에 함경남도의 원산과 문천(文川)과 안변(安邊)을 강원도에 편입시켰고, 북한의 강원도 도청 소재지이다.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는 강원도는 남북에 걸쳐 있는 ‘분단국 안의 분단도 (分斷道)’이다.
일찍부터 개항을 하였던 원산은 많은 외국인들과 문물들이 입출입이 왕성하게 이루어진 관계로 기독교도 일찍 들어오게 되었는데, 원산 지역에 가장 최초로 캐나다 출신의 게일(J.S. Gale; 奇 一)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감리교 선교부가 설치가 되었고, 조선 기독교의 침례교 선교의 기틀을 놓은 펜윅(M. C. Fenwick; 片爲益) 선교사도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관북제일의 기독교 도시로 불리어 졌던 원산지역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선교지역을 나누어서 활동을 하였는데, 원산은 캐나다장로회와 남감리회가 1907년 공동으로 선교하기로 협정을 맺어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활동하였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에 원산에서 일어난 성령운동과 관계가 있었다.
1903년 원산지역의 감리교 선교사들이 중국의 화이트(M. C. White)목사를 초청하여 선교사 사경회가 열렸는데, 캐나다에서 온 의료선교사 하디(R. A. Hardie: 河鯉泳)목사가 그 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 후 1904년 원산에서 열렸던 선교사 사경회에서 하디 선교사는 원산에 온 이후 그의 잘못되었던 선교사역에 대해 ‘나는 그동안 교만하여 한국인들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도에 실패했다’는 참회의 고백을 하였다.
그로 인하여 원산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이 여러 곳으로 확산되면서, 회개 운동이 1907년 평양대부흥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하디(R. A. Hardie: 河鯉泳) 선교사>
이와 같이 원산은 조선 기독교에서 원산은 큰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다. 원산중앙감리교회는 1901년 3월에 하디(R.A. Hardie) 선교사가 설립을 하였고, 설립 당시 초창기 이름은 상리 감리교회였는데, 1931년에 원산 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산중앙감리교회를 담임하였었던 교역자들은 1907년에는 주한명(朱漢明)목사에 이어, 오화영 목사와 3․1 만세운동에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정춘수(鄭春洙) 목사가 1919년에 부임을 하였다.
그러나 정춘수(鄭春洙) 목사는 후에 대표적인 친일파가 되어 교회를 어렵게 하는 오점을 찍었고. 오화영 목사도 민족대표 가운데 한 분이었다.
원산의 3․1 만세운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서울과 같은 3월 1일에 만세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후에도 2차, 3차에 걸친 만세 운동으로 전개가 되었다.
1919년 4월 5일과,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조약이 맺어진 8월 29일(국치일)에는 원산시가 자체를 철시하여 무언의 시위를 벌였으며, 1920년, 1923년까지 계속해서 독립을 부르짖는 시위가 있었다.
그 후 원산 중앙감리교회의 목회자는 한인수 목사, 유시국 목사를 이어 1922년에는 신석구 목사가 담임하였는데, 신 목사도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었으며, 그는 해방 후 공산정권에 의해 순교 당하였다.
1925년는 노병덕 목사, 1927년에는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 설립자인 이호빈 목사, 1936년에는 전진규 목사가 있었다.
해방 당시 원산중앙감리교회의 주소는 함경남도 원산부 남촌동 99번지였는데, 현재 주소지는 강원도 원산시 신흥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산시>
자료출처: 유관지 목사의 북한 교회 이야기 중에서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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