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하치장(荷置場)을 방불케 하는 사이비(似而非) ‘박람강기(博覽强記)’를 무기 삼아 정신 나간 자의 망발(妄發)을 남발(濫發)하는 김용옥(金容沃)의 사설(邪說)을 새삼 시비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최근 이승만(李承晩) 건국 대통령에 대한 김용옥의 망언(妄言)에 분노하는 분들을 위하여 2007년10월10일 <조갑제닷컴>에 수록했던 필자의 졸고(拙稿) 한 꼭지를 재록(再錄)한다. 강호제현(江湖諸賢)의 편달을 바란다. (李東馥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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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돌(石)’이다 — 김용옥의 狂言과 暴說
<조갑제닷컴> 2007.10.10
나는 KBS나 MBC 등 공중파 TV들이 ‘도올’ 김용옥(金容沃)에게 황금의 시간대를 할애해 주는 이유를 이해한다. 김용옥은 이들 공중파 TV 화면에 등장하여 침을 튀기면서 체조를 방불케 하는 몸짓으로 노무현 정권을 예찬하고 야당을 헐뜯는 변설(辨說)로 이들 공중파 TV의 필요에 충실하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 나라 공중파 TV들은 김대중(金大中) 씨가 창업하고 노무현(盧武鉉) 씨가 물려받아 대한민국이라는 소중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이 나라 ‘친북ㆍ좌파’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기 위한 선전ㆍ선동 활동의 일환으로 김용옥과 그 아류(亞流)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중앙일보>가 이 사람에게 그처럼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다. <중앙일보>는 망국(亡國)과 전쟁의 폐허로부터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인 대기업, 그 중에서도 선두 주자인 <삼성>을 친정(親庭)으로 가지고 있는 언론매체다. 그러한 언론매체가 김용옥을 이렇게 띄워주고 있다는 데는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있다.
그 김용옥이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의 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서울로 돌아 온 그는 KBS TV 화면과 <중앙일보> 지면을 통하여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월6일자부터 연재물처럼 김용옥의 ‘평양 방문기’를 게재하고 있다. 10월6일자에는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한 사회 그 최고선의 목적은 무엇일까 ?”; 10월8일자에는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 10월9일자에는 “북한 미술 `주체적 여백` 허락하소서”라는 제목의 글들이 실렸다.
아마도 앞으로도 <중앙일보>는 계속해서 그의 ‘평양 방문기’를 게재할 모양이다. 그 동안 게재된 3건의 글 가운데 첫 번째인 10월6일자의 글은 한 마디로 ‘개떡’ 같은 글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공공연하게 그가 10월3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관람한 북한 체제 찬양 집단체조 <아리랑>을 예찬했다.
이번에 그가 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방북 대표단원 전원과 함께 관람한 집단체조 <아리랑>은 한 마디로 강제 동원과 강제 훈련, 그리고 강제 노역으로 이루어진 군중 히스테리아(hysteria)의 집대성(集大成)이다. 이 같은 집단적 광태(狂態)는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심지어 제국 일본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김용옥이 관람한 <아리랑>의 상당 부분에는 아직 신체적으로 발육이 끝나지 못한 어린이들이 강제로 동원되고 있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집단적 아동 학대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10월3일 저녁 <5.1 경기장>에 들어서는 김용옥의 눈에 비친 “최후 일순간까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 학생의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입장 통로에 비치는 카드섹션의 모습”은 너무도 ‘현란(眩亂)’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체조의 광경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아리랑에 출연하는 5만여 명의 동작이 변검(變)의 탈처럼 순식간에 변하여 일초일촌의 오차(誤差)도 있을 수 없었고 거대한 경기장을 안방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교예사(巧藝士)들의 아슬아슬 곡예(曲藝)는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지만 그 절제 있는 동작의 미학은 찬탄(讚嘆)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리랑>이 “결코 쇼가 아니었다.” 그에 의하면, 오히려 <아리랑>은 “그들 유토피아(utopia)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인 동시에 “이러한 집체적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북한 동포들)은 “교육을 받고 의식화되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쇠망치가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에 정신 나간 미친놈이 아니고 성한 사람이 과연 10월3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연출된 ‘집단적 강제 노역(勞役)’을 이처럼 미화(美化)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나의 머리를 강타(强打)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사사건건 북한과 경쟁을 하지 아니 하고는 못 배기는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고 그 때는 북한을 능가하기 위하여 이른바 카드섹션이라는 이름의 똑같은 집단체조로 발육기의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김용옥은 나이가 어려서 기억하지 못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같은 집단체조가 나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라는 여론 때문에 중지ㆍ폐지된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어째서 이 같은 일이 남쪽의 땅에서 전개되면 인권 유린이 되고 북쪽의 땅에서 연출되면 “유토피아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이 된다는 것인가? <중앙일보>에 실릴 다음 번 ‘평양 방문기’에서 김용옥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주어야 한다.
김용옥이 <아리랑>을 예찬하기 위하여 심지어 플라톤을 들먹이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던 것은 아마도 나뿐이 아니었을 게다. 그가 <아리랑>을 보고 느낀 소감은 북한 사회가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O물에 튀할 망발(妄發)이 아니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망발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 (2편에서 계속)
이동복(李東馥, 1937년 출생)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대표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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