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하치장(荷置場)을 방불케 하는 사이비(似而非) ‘박람강기(博覽强記)’를 무기 삼아 정신 나간 자의 망발(妄發)을 남발(濫發)하는 김용옥(金容沃)의 사설(邪說)을 새삼 시비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최근 이승만(李承晩) 건국 대통령에 대한 김용옥의 망언(妄言)에 분노하는 분들을 위하여 2007년10월10일 <조갑제닷컴>에 수록했던 필자의 졸고(拙稿) 한 꼭지를 재록(再錄)한다. 강호제현(江湖諸賢)의 편달을 바란다. (李東馥 謹書)
‘도올’은 ‘돌(石)’이다 — 김용옥의 狂言과 暴說
<조갑제닷컴> 2007.10.10
그뿐인가. 김용옥은 심지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어의(語義)가 “아무 데도 없는 곳”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설(?)하면서 북한이 바로 “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어려운 정체(政體)를 가진 유토피아에 틀림없다”고 김씨왕조(金氏王朝)를 예찬하는데 침을 말리고 있다.
<아리랑>을 통해 그의 눈에 비추어진 북한은 “전일(全一)한 목적을 위해 집체적으로 통합된 사회”이고 “탐욕이 배제된 지성(nous)이 실현되는 플라톤(Platon)의 이상국가”였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북한 땅에서는, 왈(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타계(他界) 후 3천년 이상이 지난 플라튼이 놀란 나머지 무덤에서 뛰어나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용옥이 해야 할 일은 정해진 셈이다. 그는 당연히 더 이상 남쪽의 지옥(?)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그는 마땅히, 최소한 그의 직계 가족만이라도 몽땅 거느리고 평양으로 솔가이주(率家移住)하여, 북에 펼쳐지고 있는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능가하는‘이상국가’에서 직접 거주하면서 그 곳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 마음대로 여행도 못 하고, 거주지도 옮기지 못하고, 여행도 못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못 읽고, 믿고 싶은 신도 믿지 못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물론 생각도 못 할 뿐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개ㆍ돼지나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慘狀)은 외면(外面)하면서 진시황(秦始皇)과 네로(Nero), 히틀러(Adolf Hitler)와 무쏠리니(Benito Moussolini), 스탈린(Joseph Stalin)과 마오쩌둥(毛澤東)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인 김정일과 그의 졸개들과 요설(饒舌)을 희롱하면서 남은 여생(餘生)을 보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10월6일자 첫 번째 글 때문에 김용옥은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좀 듣기는 한 모양인가 보다. 그의 두 번째 글부터 그의 어조(語調)가 좀 바뀌었다. 그는 두 번째 글(제목: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에서는 평양 도착일인 10월2일 북한 사회로서는 어떻게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초호화판 연회 장소인 <목란관>에서 마침 옆 자리에 앉았던 김일성대학(金日成大學) 총장이라는 자를 상대로 그가 던졌던 “도발적 질문”들을 구화체(口話体)로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주체사상’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도중 ‘수령의 리더십의 정당성’을 시비하다가 ‘개똥철학’과 ‘사이비’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며 <목란관>에 오는 도중 “이동할 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협박조로 핏대를 올리던 통전부 안내원”의 경우를 실례로 들면서 “도무지 인민에게 복무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시비했다가 김일성대학 총장 성자립으로부터 ‘특정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말라’는 경고(警告)(?)를 들었다는 등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식의 엉뚱한 무용담(武勇談)(?)을 장황스럽게 늘어놓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쓴 세 편의 ‘평양 방문기’ 가운데서 10월9일자 세 번째의 글(제목: “북한 미술 ‘주체적 여백’ 허락하소서”)을 가장 흥미 있게 읽었다. 여기서 그가 취급한 화제가 지금부터 35년 전인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초기에 내가 겪었던 황당한 일을 연상(聯想)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다룬 화두(話頭)는 ‘사실주의’(realism)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포함된 소위 ‘특별수행원 팀’이 평양 소재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하여 <공훈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현장과 ‘전시관’에 전시된 그림을 관람하면서 북측 인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김용옥에 의하면 동행했던 문정인(文正仁) 교수(연세대)는 “북한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이 건재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김용옥은 그가 문정인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술해 놓았다. 그는 평양의 <만수대 창작사>에서 그리고 있고 또 그려서 전시해 놓은 그림들을 가리켜 “내 눈에 비친 북한 그림은 솔직히 말씀드려 옛날 ‘이발소 그림’의 정교한 형태”라고 혹평(酷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10월9일자로 기사화된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김정일 위원장께 비옵나이다. 화가들에게 다양한 화풍과 다양한 주제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적 여백(餘白)을 허락하시옵소서. 북한 화가들의 기초실력은 뛰어납니다. 이제 새로운 전환으로 도약해야 할 때이옵나이다” 운운….
그러나, 김용옥의 이 세 번째 글의 압권(壓卷)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더구나 북한 그림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칙을 버렸다”는 대목이었다. 그는 <로동신문> 기자에게 북한의 그림이 “어두운 사회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금강산이나 어여쁜 소녀, 화려한 산수(山水)를 사생하는 데 세필(細筆)을 소진(消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그림은 사실주의 그림이 아니라 합목적적 장식화에 불과하다”면서 “세필이 있으면 갈필(渴筆)도 있어야 하고, 구상이 있으면 추상이 있어야 하고,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부언하기도 했다. 요컨대 <로동신문> 기자를 상대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 강의를 시도(試圖)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김용옥의 말은 나에게는 우습기만 하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가지고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면서 시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에 관해서는 내가 겪었던 일을 들려주어야 하겠다. –– (3편에서 계속)
이동복(李東馥, 1937년 출생)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대표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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