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86세대의 “불로장생”: 세대 간 불평등
현재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2015년만 하더라도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의 평균 정년 연령은 57세였고, 55세를 정년으로 하는 사업체도 많았다. 또한 대기업에서는 40대 후반부터 ‘명예 퇴직’ 하는 것이 상시화 되어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했을 때, 생애주기에서 50대가 경제적으로 정점에 이르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런 것은 연령효과다.
그런데 현재의 86세대는 무엇이 다른가? 이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령효과를 보정한 코호트(통계상의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 효과를 비교해보아야 한다.
즉 60년대생이 40대인 2000년대의 통계와 70년대생이 40대인 2010년대 통계를 비교해보아야 한다. 최근에 나온 여러 분석들을 소득과 자산이라는 측면으로 분류해 정리해보았다.
1) 소득
첫째, 60년대생은 이전 세대들보다 더 빠른 소득증가를 경험했다. 또한 50대가 된 현재, 이전 세대들이 50대에 도달한 것보다 높은 소득수준에 있다. 그러나 그 이후 70년대생부터는 이러한 경향이 사라졌다.
이철승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60년대생들은 이전 세대들과 비슷하게 20대 중반에 입사해서, 이전 세대보다 빠르게 소득이 증가했고, 더 오래 정점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졸 이하 생산직이나 대졸 이상 사무직 모두에서 나타난다.
50대의 노동시장 상위 20% 점유율이 지난 10년간 크게 증가했다. 2004년 50대의 노동시장 상위 20% 점유율은 11%인 반면, 2015년에는 19%다. 이전 세대보다 더 오래 노동시장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후 세대들은 근속년수가 짧다. 같은 노조로 조직화된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한 비교에서도 6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은 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보다 근속년수가 길다.
1960년대 후반 출생의 2000년대 초반 때 근속년수와 1970년대 후반 출생의 2010년대 초반 때 근속년수를 비교하면 11.6년 대 9.7년으로 2년 정도 차이가 난다.
외환위기로 인해 입직시점이 늦어졌거나, 외환위기 이후 이직율이 높아진 것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심혜정 과장의 「연령-소득 프로파일(age-earnings profile) 추정을 통한 세대 간 소득격차 분석」 에 따르면 1997년 이전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의 경우 그 이전 세대보다 생애전체의 소득수준이 뚜렷이 개선되지만, 그 이후의 세대는 정체한다.
그 이유는 1997년 이후 노동시장 진입임금의 상승이 정체되거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진입임금의 정체 내지 하락은 생애주기 전체의 소득커브에 영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즉 연령 증가에 따른 소득상승률도 낮다.
심혜정은 199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의 상승, 청년층의 고학력화 현상을 고려하면 생산성 때문은 아니고, 고용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인한 청년층의 고용사정 악화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론한다.
2) 자산과 세습
둘째, 자산에 있어서도 60년대생은 1990년대 이후 대규모 아파트 공급과 주택금융화의 혜택을 받았다. 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상속, 소득과 저축, 자산가격의 상승 등 다양해서 세대 간 비교가 더욱 까다롭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소득이 많으면 결국 자산 증가율도 높을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386 세대유감』이나 『세습 중산층 사회』는 몇 가지 단편적인 통계 자료들을 바탕으로 86세대가 자산을 증식시켜 온 전형적인 경로를 구성한다.
우선 『386 세대유감』에서는 가계순자산 증가 수준을 바탕으로 횡단면적 비교를 한다. 2006년에서 2010년까지 86세대의 가계순자산은 88% 증가한 반면 유신세대(50년대생)는 41% 증가했고, 산업화세대(40년대생)는 9%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분석은 없는데 사실 40년대생들은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산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6세대와 유신세대의 차이는 주목할만하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분석 시점을 늘려보면 86세대 대졸 이상의 가계순자산은 96%, 고졸 이하는 73% 증가한 반면, 유신세대 대졸 이상은 37%, 고졸 이하는 45% 증가했다.
『386 세대유감』의 저자들은 86세대가 1989년 제1기 신도시 개발계획 이후 1991년 주택 200만 호 공급 시기에 분당, 일산, 평촌 등에 입주하면서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보았다고 추론한다.
이 시기에 86세대가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도입된 주택청약제도와 주택금융규제 완화의 혜택도 받았다고 본다.
86세대의 주택 자가점유율은 1993년 22%에서 2003년 51%로 증가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모아서 집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 통계에는 연령효과도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86세대는 아파트를 샀다는 것이다.
1999년 한국노동패널 조사에서 60년대생은 76%가 아파트를 보유한 반면 50년대생은 21%에 불과했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 또한 86세대가 주택가격, 특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의 상승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보았다고 추론하고 있다. 나아가 수도권에 아파트(주택) 2채 정도를 보유한 상위 10% ‘세습 중산층’이 형성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들과 하위 90%의 자산격차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산은 세습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세습 중산층’ 86세대들이 특정 학군에 밀집하여 자녀들의 교육을 통해 능력 혹은 ‘스펙’까지 세습한다고 분석한다. 학군별 명문대 진학률, 대기업 신입사원들의 부모 학력 등의 통계를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86세대 내에도 ‘학번 없는 60년대생’이 있고, 청년 내에도 연애, 취직, 결혼 등 포기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는 ‘N포세대’와 외국어 실력, 유학경력 등 부모가 만들어 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G(lobal)세대’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세습 문제는 정량화하긴 어렵지만, 기회의 평등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현재 사회적으로 더 예민한 문제이다. 조귀동은 사실상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와 그 격차의 세습, 즉 세대 간 이전에 더 주목한다.
그러나 세대 간 격차,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등 ‘다중격차’를 만들어낸 첫 세대가 86세대라는 점을 지적한다.
3) ‘60년대생의 행운’ 혹은 아이러니
86세대는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궤도에 오를 때 태어나, 고도 성장기에 20대를 보내고,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사회에 진출했다.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소득성장과 자산성장을 경험했고,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X세대(70년대생), 밀레니엄 세대(80년대생 이후)의 선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다.
이것은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 경제가 이전과 다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노동자 간 경쟁이 극단화되며 오히려 자본의 힘이 강해졌다는 식의 현상적 이해를 넘어 한국 자본주의가 1990년대 성장기에서 불황기로 국면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IMF의 권고에 따라 금융세계화에 편입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윤소영 교수가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2001)』에서 제시한 한국경제분석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분석은 자본축적의 추세선으로부터 이윤율의 추세선을 도출한다. 1979-80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중화학공업화에서 신자유주의로 이행한다. 이윤율은 1977-79년 34.9%에서 80년 29.7%, 81년 34.0%에서 82-87년 43.6%로 상승한다.
그러나 1986-88년 3저 호황과 1989년 그것이 끝난 이후 오히려 재벌 체제가 강화된다. 수익성을 무시한 재벌의 과잉투자로 인해 또다시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87년 48.0%까지 상승했던 이윤율은 88-91년 35.8%, 92-94년 27.6%를 거쳐, 95-97년 21.4%로 급속히 저하한다.
‘지각한 88-89년 공황’이라 부를 수 있는 97-98년 공황은 한국 경제의 장기불황을 예고한다고 끝맺는다.
주류 경제성장론에서도 1988년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변화를 보였다는 분석이 있다. 국책연구원인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기획한 KDI-하버드 연구시리즈 『기적에서 성숙으로: 한국경제의 성장(2013)』을 참고할 수 있다.
「2장 거시경제의 성장원천」에서 저자들은 IMF위기가 고도성장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하면서도, 1인당 GDP성장률에 중대한 변화가 이뤄진 시점(break point)은 더 일찍 왔다고 주장한다.
1인당 GDP의 추세선이 1989년과 1998년에 두 번 뚜렷이 변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1989-97년 사이에 자본-노동비율(노동량에 대한 자본량의 비율)이 가속 성장함에도 1인당 GDP가 현저하게 둔화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종합해, 한국경제는 1980년대 후반에 생산성을 촉진하기 위한 손쉬운 접근법(외국 기술 수입, 이촌향도 등)을 소진했지만, 투자율과 자본-노동비율의 상승(재벌의 마구잡이식 신규투자)으로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결론짓는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86세대는 대학에서 군부독재 비판에 앞장섰고, 나아가 독점자본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한국이 금융세계화에 편입되며 해외 자본이 유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할 때 사회에 진출한 것이다.
‘86세대의 행운’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될 때 사회에 진출해, 그 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보다는 성장기의 마지막 혜택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또한 ‘학번 없는 60년대생’을 포함한 ‘60년대생의 행운’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졸 이하, 저임금 생산직 내에서도 세대 간 차이는 다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4) 도덕적 비판을 넘어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386세대 비판은 도덕적 비판에만 머문다. 『386 세대유감』의 저자들은 ‘사회적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불평등 문제를 논의할 때 가장 무난한 답이다.
자유권에서 사회권으로 확장, 정치민주화에서 경제민주화로 이행하자는 논의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이미 86세대가 지난 10년간 야당으로 있을 때 가장 많이 써먹은 논리다.
민주노동당의 무상복지 공약,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1만 원 캠페인 등을 민주당의 공약으로 가져간 것이 바로 민주당의 86세대다.
그나마 이철승 교수는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정책 패키지를 제시한다. 노동시장 상위 20%의 임금 억제를 통한 청년 신규 고용, 연금제도 개편, 자산세 증가 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정책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철승은 여기서 “386세대의 두 번째 희생”을 요청한다.
이러한 세대적 희생이라는 요청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학번 없는 60년대생’,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지 않는 1960년대생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정치적 네트워크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이득을 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한 고향 친구, 학교 동기를 보면 질투를 느끼듯, 오히려 같은 세대 내의 격차에 더 많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민주화운동에 희생’한 경험을 정치 자산으로 삼는 민주당의 집권 엘리트 86세대들에게는 이런 도덕적 요청이라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집권 86세대’들에겐, 세대 간 불평등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능력이 없다.
그 이유는 ‘집권 86세대’가 형성된 과정과 그 특성에 있다.
(part 3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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