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86세대’로 일컬어지는 이 나라 50∼60세 연령층이 읽는 사이버 계간지(季刊誌) “사회진보연대”(People’s Solidarity for Social Progress) 2020년 봄 호에 수록된 ‘사회진보연대 김태훈 정책교육실장’의 글입니다.
저의 경우는 필자와 같은 연배의 아들이 보내 준 이 글을 읽고 많은 점에서 귀중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국난의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이 나라 연령층 간에 존재하는 단절의 벽을 실감할 수 있었고 이들의 선행 세대로서 우리 늙은이들이 그 같은 소통의 단절에 대해 느끼지 않으면 한 되는 무거운 책임을 뼈저리게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긴 내용이지만 시간을 내서 읽어 보시고 우리가 독후감을 통하여 이 소통의 문제에 어떻게 현명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회진보연대(People’s Solidarity for Social Progress) 2020년 봄 호⌉
‘집권 86세대’의 포퓰리즘 – 86세대론 비판과 재구성’ 〈김태훈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이 글은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86세대 비판을 재구성한다. 먼저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세대 간 불평등의 현실을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연관해서 고찰한다.
‘60년대생의 행운’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될 때 사회에 진출했다는 역설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세대 간 불평등 역시 세대적 특성만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동역학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권의 요직을 차지한 86세대 핵심 정치 엘리트들의 형성과정과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비판한다.
‘집권 86세대’는 자신들의 운동 경력을 박제된 신화로 만들며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념적 지향과 구체적 정세를 무시하고, 오로지 보수에 대한 반대로써 집권을 추구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집권 86세대’는 세대 간 격차를 방조하고, 이를 더 심화시켰다. 노무현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반 보수 포퓰리즘이 더 심해지고 있는 이유도 집권 86세대의 지위와 무관치 않다.
- 86세대는 ‘꿀빤 꼰대’ 인가?
1) 86세대 비판의 재 부상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을 통해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이른바 ‘386세대’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노무현 탄핵의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386세대는 정치권에 대거 입성했다.
‘386’은 당시 최첨단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기성 정치를 바꾸는 새로운 주류가 되리라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능력 없고 과격한 아마추어 같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주로 보수진영이나 386보다 위 세대의 관점에서 비판이 이뤄졌다. (그 다음 대통령인 이명박이 실용주의를 강조했다는 사실도 상기해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비판의 관점이 바뀌었다. 386세대들은 이제 50대, 즉 ‘586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젠 86세대로 통칭한다.)
이제 86세대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기성세대다. 집권정치인들의 경우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또한 기업, 학계, 언론, 지역사회 등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지배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소위 ‘태극기 부대’ 가 아니라, 젊은 세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86세대에 대한 원망, 심지어 혐오도 종종 나타난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 ‘꿀만 빨다가 힘든 건 다 떠넘겨 놓고 꼰대질 하는 아재들’ 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86세대와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논의도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불평등의 세대』 를 쓴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86세대의 응집력 높은 네트워크(“세대의 정치”)가 새로운 “한국형 위계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386 세대유감』의 저자들 또한 86세대가 시대적 행운을 능력으로 둔갑시켰고, 현재의 헬조선에 적극적 가담 혹은 소극적 방관을 해왔다고 비판한다.
2) 또 다른 ‘시선 돌리기’
이런 논지를 보수언론이 적극 활용하니까, ‘계급이냐 세대냐’ 라는 쟁점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는 “조국 사태,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 문제다” 라는 칼럼에서 “1960년대생이 기득권 세력으로 비치는 것은 그들이 지금 50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 든 50대가 주도한다.”고 반박한다. 또한 “조국 장관은 386의 대표가 아니다.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었다.
사노맹은 일종의 ‘좌파 맹동주의’ 였다. … 386세대의 대표적인 정치인은 더불어 민주당의 이인영· 우상호· 김영춘 의원, 임종석 전 의원 등 다른 사람들이다.
운동권 출신 386세대의 자식 중에는 조국 장관의 경우와 달리 상류층 진입에 실패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다시 반 보수 프레임을 만든다. “기득권 세력은 ‘시선 돌리기 ’의 도사들이다.
계급의 문제를 늘 다른 쟁점으로 물타기 했다.” 그런데 대체 누가 기득권 세력인가?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더 나아가 세대담론이 인종주의, 성차별과 닮았다고 주장하며 ‘386 말하지 않기 ’를 제안한다. 한겨레는 이 논문을 ‘386담론의 일베화’ 라는 기사로 보도했다.
성한용 기자의 이러한 주장은 또다른 ‘시선 돌리기’ 아닌가? ‘세대’ 랑 ‘계급’ 은 다른 층위의 논의다.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불황기에는 성별 임금격차나 청년고용, 비정규직 문제처럼 노동자계급 내 분할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계급 내 불평등에 주목한다고 정규직 노동자, 남성 노동자를 적대화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분할을 방치하면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불가능함을 폭로하는 것이다. 세대 간 불평등도 이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분석이다.
(part 2 에서 이어집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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