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재인정부와 집권 86세대
다음으로는 서두에서 밝힌 대로 문재인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86세대 핵심 정치 엘리트들의 특징을 비판한다. 86세대 전반이 아니라 주로 80년대에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거쳐 정계에 입문해 현재 민주당의 중진이나 청와대에 있는 ‘집권 86세대’들이 그 대상이다.
1) 노무현과 문재인의 세 가지 차이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운명이다’)에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3기 민주정부’를 주창하며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노무현의 재발견’이 회자되고 있다. 초기에는 문재인이 노무현하고 똑같다고 비판했다면, 요즘은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무엇이 다른가?
첫째, 경제정책에 있어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반경제학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노무현은 삼성경제연구소의 과외를 받고 이헌재와 같은 모피아를 중용하는 등 일정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한다.
집권 초부터 재벌·공공부문의 조직 노동자와 대립했다. 철도민영화, 화물연대 파업, 기간제법 제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입 등 임기 내내 민주노총과 강하게 대립했고, 노무현은 “노조의 특혜를 해소해야 한다”며 강경 대응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통한 사람중심경제로 3% 성장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양대 노총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분배하면 성장한다’는 주장은 경제학적 근거도 부족하고, 노동자도 좋고 자본가도 좋다는 궤변에 가까웠다.
결국 공정성 시비가 발생하고, 자영업자와 노동자 간, 청년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 갈등이 커졌다. 게다가 경기침체가 깊어지는 등 경기순환에 따른 대응도 실패했다.
비판을 받으니 슬그머니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로 포장을 바꿨다. 그러나 역시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고, 방향이 일관적이지도 않다. 최근에는 거시경제 개혁은 아예 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주당의 총선 1호 정책이 공공 와이파이 확대였다.
일관적이고 경제학적 근거를 갖춘 대안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불만을 달랠 뿐이다. 이런 반경제학적 정책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고, 그 위기를 진지하게 대면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분배를 둘러싼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더 심화시킨다. 장기불황을 인지하고, 그것을 관리하려는 신자유주의보다 더 노동자 민중의 삶에 파괴적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특징은, 대외정책에서도 주관적 희망에 근거해 비현실적인 민족주의 선동을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동북아 경제허브를 추진하고 햇볕정책을 계승했지만, 동시에 이라크 파병,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강행했다. 집권 후반에는 동북아 경제허브에서 한미FTA 추진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행보는 “미국에 할 말은 한다”기에 노무현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대를 했던 반미운동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또한 남북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북미 대화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빅딜이 가능할 것처럼 상황을 호도해 오히려 미국과 북한 양자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일본과 갈등도 폭발했는데,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대응을 넘어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했다가 미국과 갈등이 더 심해지면서 꼬리를 내렸다.
한일갈등이 정점에 있던 2019년 광복절에는 ‘남북 평화경제’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경축사를 해 비현실적이라는 빈축을 샀다.
이렇게 주관적 희망에 근거한 정세판단을 내리다보니, 전통적 동맹의 신뢰는 잃어버리고, 그렇다고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교착상태이며, 일본과의 갈등 역시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민족주의 선동에 매달리고 있다.
북핵문제와 한일갈등은 미국 대선으로 인해 ‘휴전’상태에 있지만, 조만간 더 큰 시한폭탄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현재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더 심화 되어있다.
또한 미중관계가 경쟁적 갈등 국면이 되면서 고도의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정세의 엄중함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실력은 노무현 정부보다도 취약하다보니, 수동적인 민족주의 감정은 더욱 극대화된다.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의 해법 없는 곤란 속에서 문재인 정권의 세 번째 특징이 나타난다. 반보수 포퓰리즘의 심화다.
반보수 포퓰리즘은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며 지지기반이 취약해진 노무현 정권은 ‘반기득권’개혁을 추진하며 지지층을 동원했다.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며 친일-군부독재의 과거사를 쟁점으로 삼았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를 공격했다. 그러나 4대 개혁 입법은 극심한 국론분열 속에서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추진해보지만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검찰과 갈등하면서 실패한다. 의회로부터 탄핵 되었으나, 촛불의 지지와 헌법재판소의 기각으로 기사회생한다.
지역구조 해소를 위해서라면 야당과 대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지만, 여야 모두로부터 고립된다.
결국 임기 말 지지율은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보다도 낮았고 다시 정권교체를 허용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원한에 사로잡힌 듯, 철저하게 ‘기득권’을 제압하려고 한다. 제1야당을 배제한 패스트트랙 처리를 통해 의회를 무력화했고, ‘조국사태’는 야당의 지속적인 장외투쟁, 국론분열을 폭발시켰다.
입법부의 약화와 극단적 국론분열은 상호 고소고발로 이어지면서, 검찰의 권한이 강화되고, 위헌소송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정치적 결정이 위임되는 식의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한다.
청와대는 검찰을 악마화하는 동시에 공수처를 신설하고 경찰을 강화하면서 이러한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강화한다. 국정농단(권력의 사유화)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결하긴커녕, 더 강화하고 있다.
2) 문재인 정부의 집권 86세대
반경제학, 보편적 객관성을 상실한 민족주의, 반보수 포퓰리즘은 왜 문재인 정권에서 더 심화되었을까? 우선 정세적 측면이 있다. 2007-09년 금융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은 약화되었으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은 부재했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했다.
한편에서는 초민족적 엘리트들을 ‘반제국주의’와 유사한 논리로 증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약소자를 멸시하고 국경을 차단한다. 이러한 기층의 정서를 이용한 정치인들이 기존의 주류 정치를 파괴하고 등장한다.
공화당 주류와 갈등하고 월가에서도 무시하는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이를 극명히 보여주었다. (최근 트럼프는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긴 하다.)
한국도 이런 정세에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주체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현 문재인 정권의 핵심 세력이 바로 80~9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86세대’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차이도 여기서 비롯한다.
물론 86세대는 노무현 정권 때도 일등공신으로 나이에 비해 핵심 요직을 차지했으나, 경험이 부족했다. 노무현 대통령 본인도 한미FTA 추진, 야당과 대연정 제안 등 86세대와 다른 자기만의 행보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을 폐족으로 불렀던 ‘친노’가 부활하기 위해 옹립한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야당 생활을 거쳐 다시 집권한 민주당의 ‘집권 86세대’들은 이제 50대 586이 되어 정권의 핵심부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20대 국회의원 128명에 대한 조선일보의 전수조사를 참고할 수 있다. 민주당 주류는 80~87학번이 67명이다. 그 중에도 1987년 항쟁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 세대인 81-84학번이 45명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87년 항쟁을 겪어보지 못한 88-89학번은 2명에 불과하다. 90년대 학번은 10명이고, 최연소가 96학번(1977년생, 당선 당시 39세)이다.
이것은 86세대의 경험과 크게 다르다. 86세대는 자신들이 30대인 2000년 총선에서부터 국회에 들어오기 시작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대거 진입한다.
이철승 교수의 세대별 국회의원 입후보자 및 당선자 분포를 보면 86세대는 자신들이 30대인 1990년대에 이미 역사상 어떤 30대들보다도 더 많이 공천을 받았고, 40대가 된 2004년, 2008년 총선에서 가장 많은 입후보자 점유율을 차지한다.
또한 당선자 점유율도 50대가 된 2010년대에 가장 높아지는데, 이전 산업화 세대(50년대생)보다 훨씬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21대 선거에서도 86세대가 당선되면 60대가 되는데, 이른바 ‘386퇴진론’에도 불구하고 60대가 높은 비율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즉 문재인 정부의 ‘비선실세’로 언급되는 이들도 86세대다. 이른바 ‘3철’ 중 양정철, 전해철도 그렇고, 선거운동 참모조직이었던 ‘광흥창팀’도 13명 중 2명(이진석, 탁현민)을 제외하면 모두 86세대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국민대 88학번 총학생회장, 문재인 후보 시절 비서관)과 김경수 경남도지사(서울대 86학번, 이른바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다. 댓글조작 혐의로 구속 중인 김동원(드루킹)은 그들이 실질적 권력서열 2위, 3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광흥창팀 13명 중 양정철 등을 제외한 10명이 청와대로 들어갔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기소 내용과 각종 언론기사에 언급되는 청와대 보좌진들 대부분이 82-87학번 운동권 출신이다.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 전 비서실장(한양대 86학번)이나 사노맹 출신인 조국 전 민정수석(서울대 82학번)은 말할 것도 없고,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고려대 85학번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한병도 전 정무수석(원광대 86학번 총학생회장)도 마찬가지다.
선거개입 사건의 핵심 증거자료인 ‘송병기 업무수첩’에도 언급되어 있는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임종석, 김경수 등과 술자리에서 울산시장 경선을 포기하는 대신 오사카 총영사를 제안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 후 임동호는 말을 바꿨고,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상황이다.
86세대가 ‘학연’, ‘지연’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 내부자 집단을 구성한다면, 여기에 참여연대나 민변 같은 시민단체와 이 단체들에 깊이 관여한 교수들,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함께한다. 문재인 정권 초 장하성, 김상조, 김기식, 조국 등이 임명되며 ‘문재인 정부와 참여연대의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나왔다.
중앙일보는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참여연대 정기총회 자료집에 포함된 임원 명단을 현 정부의 인선안과 대조한 결과, 총 62명이 참여연대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권 첫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 교수가 대표적 ‘폴리페서’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이던 시절에는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며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다가 안철수 선본에 참여하며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더니, 문재인의 ‘삼고초려’를 받고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이끄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과 갈등 끝에 동시에 교체된다.
86세대, 특히 전대협 지도부 출신들이 현재 권력 실세라는 것만 문제로 제기하면 형식적 비판에 머물기 쉽다. 어느 정권에서나 ‘비선실세’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정치 현실로 인해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부터 보좌했던 참모들이 공적 지위를 넘는 권력을 행사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포회 출신)’ 이나 박근혜 정권의 ‘십상시’도 그러했다.
형식적 비판은 앞서 살펴본 경제적 불평등론과 비슷하게 “후배에게 기회를 주라”는 86세대 용퇴론이라는 도덕적 비판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머물게 아니라, ‘집권 86세대’의 특징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part 4에서 마지막으로 이어집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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