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산에서 파로호까지 1-
5월 20일 첫새벽, 7연대에도 반격 출동 명령이 하달됐다. 소년은 소대원들과 주먹밥과 멀건 시래깃국, 미군 측에서 제공한 C-레이션 등으로 간단 신속하게 식사를 마쳤다.
중대 막사 앞에 소대별로 도열한 12중대원들은 군장검사와 무장 상태를 점검 받고, 용문산 북쪽 427고지를 향해 출발했다. 배가 고픈 소년은 걸으면서 새벽 식사 시간에 따로 몇 개 챙긴 주먹밥을 선임들 눈치를 봐가며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그런데 목표로 한 고지 하단부에 다다랐을 때쯤 소년의 배가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소대장에게 보고하고 어느 바위 뒤로 가서 허겁지겁 바지를 내렸다. 쭈그려 앉기가 무섭게 설사가 났다.
행군 중에 먹은 주먹밥뿐 아니라 출발하면서 한 입에 털어 넣다시피 한 시래기 줄기가 생으로 쏟아졌다. 소년은 여전히 뱃속이 편치 않았지만, 서둘러 옷을 추스르며 소대원들을 따라잡았다.
소대원들은 얼마 가지 않은 곳에서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대장과 고참들의 핀잔을 들으며 소년도 고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427고지를 연대 최후의 보루로 삼아 중공군 3개 사단을 막아내며 분전하고 있는 2연대가 중공군과 뒤섞여 혈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7연대는 427고지를 좌회, 중공군 후방을 급습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소년도 소대원들과 함께 이른 새벽 고지를 향해 신속 기동을 시작했다.
(미 제9군단과 국군 제6사단 1개 연대가 중공군 포위작전으로중공군을 섬멸한 파라호)
소년은 부글거리는 배를 참아가며 걷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427고지 좌측을 돌아 어느 야산을 오를 무렵이었다. 소년은 하늘이 노래지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본격적으로 복통이 시작된 것이다.
소년은 산기슭에 주저앉아 복통을 호소했다. 선임병들이 꾀병 부리지 말라며 호통쳤다. 소년은 고참 병사들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복통은 멈출 줄 몰랐다. 초산 온정리 산골짜기에 갇혀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소년이 이번에는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소대장이 소년의 상태를 살피러 왔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채 창백해진 소년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소대장은 소대원들 눈을 피해 가며 게걸스럽게 주먹밥을 먹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대장은 손수건을 꺼내 소년의 얼굴에 얼룩진 땀과 눈물을 닦아 내며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이 녀석을 후송해라.”
병사 둘이 축 늘어진 소년을 부축해서 산을 내려갔다.
소년은 기진맥진해진 채 주둔지 야전병원으로 옮겨졌다. 식중독이었다. 소년이 의식을 잃고 야전침대에 누웠다가 눈을 떴을 때는 5월의 햇살이 한가득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들것을 든 병사들이 주둔지 영내로 들이닥치더니 야전병원으로 달려왔다. 말이 야전병원이지 땡볕 아래 군용 야전침대 몇 개 놓여 있는 게 다였다.
소년은 위생병들에게 떠밀려 야전병상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정신을 잃은 것처럼 한 숨 푹 자고 났더니 복통도 가시고 몸도 개운해져 있었다.
소년은 위생병들을 도와 사상자들을 야전병상으로 옮기면서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들것에 실려 온 사상자들이 모두 소대원들이었다.
그 중에는 자신을 후송 보낸 소대장도 있었다. 소대장은 얼굴과 전투복이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실려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대장을 부르며 다가섰다.
“소 소대장님!”
소대장은 피로 얼룩진 얼굴에 두 눈을 껌벅이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대장의 손이 소년의 손을 쥐는 게 느껴졌다. 힘이 없었다. 그 뒤로 소년은 소대장을 다시 볼 수 없었다.
(16세 학도병과 소년병들)
소년이 야전병상에 누워 꿈속을 헤맬 무렵이었다. 소대원들은 목표로 한 427고지를 좌회하여 후방의 중공군 주력을 기습하기 위해 어느 능선을 지나고 있었다.
5월 하순으로 접어든 계절의 덜 익은 녹음을 엄폐물 삼아 기동하던 소대원들은 매복해 있던 중공군 정찰조와 조우했다.
중공군의 따발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소대원들은 산개하여 바위며 나무 그루터기를 엄폐물 삼아 대응사격을 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치열한 총격전이 전개되는 동안 인접한 다른 능선을 따라 기동하던 중대원들이 달려왔다.
증원된 적군의 기세에 놀란 중공군들은 사상자들을 버려둔 채 달아났다. 소년의 소대가 입은 인명 피해는 막심했다.
소년은 그 날로 다시 427고지로 투입되었다. 재투입된 소년의 소대는 소대장뿐 아니라 상당수의 소대원이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2연대의 결사항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던 중공군은 427고지에 6사단 주력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공군 제63군은 예비사단인 189사단까지 427고지에 투입함으로써 고지는 국군 1개 연대와 중공군 3개 사단 병력이 뒤섞여 고지 사수와 점령을 위한 근접 백병전이 벌어지며 대혼전이 벌어졌다.
중공군은 치밀한 사전 정찰로 상대의 약점을 알아낸 뒤 병력을 그곳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전법에 능했다. 기습과 매복 등 변칙에 강해 국군과 연합군은 애를 먹어야 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중공군 나팔수가 신호를 울리는 가운데 병사들이 공격에 나서고 있다. [중국 해방군화보사]
그러던 중 427고지 좌우 능선으로 우회한 7연대와 19연대가 중공군 후방 좌우에서 들이닥쳤다. 후방을 기습당한 427고지의 중공군 3개 사단 병력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맹렬하게 고지를 달려 올라가던 기세가 꺾이며 중공군들이 고지 하단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좌우에서 치고 들어온 7연대와 19연대 병사들의 화기가 불을 뿜었다.
대대 예하 중대마다 몇 명씩 인원을 차출 충원함으로써 편제가 갖추어진 소년의 소대원들도 적진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6사단은 자신들이 사창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채 무질서 속에 퇴각했던 것처럼 혼란에 빠져 쫓겨 가는 중공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청평댐을 건넌 중공군은 가평읍에 이르러 일부는 북한강 북안을 따라 일부는 가평천을 거슬러 올라 산악을 타고 넘어 사북면 지암리 분지에 집결했다.
그러나 미리 포위망을 치고 있던 미군과 뒤쫓아 온 6사단에 의해 궤멸되며 용문산전투는 국군 제6사단의 대승으로 대단원을 장식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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