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재 교육문화평론가
(기사제공: 더 자유일보)
이승만·박정희, 위선·독선적 명분문화 철퇴 내린 불세출지도자
(1957년 8월 9일 이승만 대통령이 수해를 입은 영남지역 농가를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몰락한 한민당은 성리학적 명분을 갖고 있었고 호남에서 올라온 지주들이 주축이었다. 적극적 또는 소극적 친일을 했고 5백년 이상 대를 이어 호의호식했던 자들의 후손인 한민당은 민주와 민족의 명분을 선점하여 적반하장으로 이승만을 독재와 친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그 뿌리에서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여야 막론하고 주류를 이루는 김대중 계열과 김영삼 계열이다.》
YS와 DJ가 민주의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사실상 왕으로서 권력의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호의호식했듯이,
노빠와 이니는 각각 촛불 정권 1기와 2기의 바지 사장으로서 민족의 깃발을 꽂고 얼굴 없는 실세가 시키는 대로 자유민주의 풍차를 향해 대포를 쏘고 시장경제의 포도주 가죽부대를 향해 기관단총을 갈기라고 지시하며 돈 꽤나 챙겼고
A4 용지에 쓰인 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명령하고 지시하고 강변하면서 촌음을 아껴 황제 도시락을 먹고 있다.
그뿐인가, 그들은 자손대대로 호의호식하도록 각자의 이름을 딴 공익재단을 만들어 사실상 그 후손에게 물려주었고 이대로 가면 아마 나머지 한 명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한국인의 명분문화는 선악의 사고 체계라, 무조건 선(善)인 ‘우리’와 불문곡직 악(惡)인 ‘남’으로 딱 가른다.
그 다음은 생사를 건 투쟁의 연속이다. 악의 세력을 말살할 때까지! 설령 항복해도 용서란 없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연좌제를 적용하여 상하로 3대를 욕보이고 좌우로 3족을 멸해도 직성이 안 풀린다. 발본색원, 삭초제근! 3대는 9대로, 3족은 9족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민주, 너희는 독재!
(한국민주당. 1945년 9월 16일 서울 천도교기념관)
우리는 민족, 너희는 친일!”
이 명분문화는 누가 주도한 것이며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 상위 3% 양반 겸 지주가 주도했다. 그들이 언제 몰락했을까. 일제시대? 아니다. 해방 후 바로? 아니다.
해방 후 5년 뒤, 1950년!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물적 기반을 잃어버림으로써 비로소 그들은 몰락했다.
일제시대에도 해방 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자손은 대체로 잘 먹고 잘 살았다. 백에 하나 꼴로 독립운동하고 반일한 훌륭한 분들도 있었지만, 친일도 대부분 그들이 도맡아했다.
2백만 헥타르(ha)가 2백만 농가에 거의 똑같이 분배되면서(*), 가장 큰 부자가 3헥타르 곧 45마지기로 아무리 잘해 봐야 당시는 생산성이 형편없어서 백석꾼이 안 되었다. 천석꾼 만석꾼의 씨가 말랐다.
예전의 대지주들이 가진 것은 기껏해야 3헥타르(3만 ㎡)의 농지와 나머지는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던 지가증권(地價證券)!
(*북한은 토지를 분배하는 척하면서 모든 토지를 협동농장으로 만들어 사실상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까삐딴 김이르센] 한 명의 수중에 바쳤다. 주체사상은 유일사상이고 유일사상은 유일수령 만세 사상이고, 그것은 다시 유일무이 지주이자 무오류의 유일신으로 떠받드는 김일성 만세 사상이다. 반면에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단 한 뼘의 땅도 안 챙겼다!)
이때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망한 사람들이, 1392년에서 1949년까지 558년 동안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았던 ‘양반’들이 이승만이라면 이를 갈던 한민당의 주류를 이뤘다.
이들이 바로 ‘민주’의 천막을 치고 농성하며 신문과 잡지를 통해, 교육을 통해, 이승만의 ‘독재’와 이승만의 ‘친일’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그 뿌리가 여야 가릴 것 없이 골고루 포진한 YS 계열과 DJ 계열이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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