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목사의 회개의 제사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시발지 장대현교회의 당회원. 왼쪽부터 김선두 목사, 정의로 장로, 마포삼열 목사, 길선주 목사, 이길함 목사, 옥경숙 장로, 위참석 장로. 뒤줄 왼쪽부터 김성택 목사, 박치로 장로, 안봉주 목사. (사진제공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1. 평양 대각성운동의 시작이었던 길선주의 회개
길선주의 회개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도사경회’기간에 일어났다. 이번 사경회는 1907년 1월 2일부터 약 2주간 동안 진행되었다.
길선주의 회개는 일종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사경회에 참석했던 다수의 교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 집단적으로 죄를 회개하였다. ‘집단회개’는 평양 대각성부흥운동의 중심 알맹이였다.
이와 관련하여, 1903년에 시작되고 1907년에 절정을 이룬 한국 교회의 대각성부흥운동은 지은 죄를 회개한 신앙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기록인 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1928년)에 보면, “一千九百七年 一月(1907년 1월)에 平壤將臺峴敎會(평양 장대현교회)가 復興(부흥) 하니라” 고 기록되었다.
몇 달 전부터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는 가운데서, 길선주의 회개사건이 일어났다. 1906년 10월에 역시 장대현교회에서 며칠 동안 저녁집회가 열렸는데, 이 집회에 참석한 미국의 존스튼(howard agnew johnston)목사가 최근에 인도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성령의 역사)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가 청중을 향해 “성령 받기 원하는 사람 일어나라” 고 소리치자 장로 길선주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이후로, 평양의 교인들이 성령의 임재를 위하여 “날마다 한 시간씩”(one hour each day) 기도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도 물론 동참하였다. 이 기도는 몇 달 동안 그 이듬해 1월의 도 사경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사경회 기간의 주일 낮에, 장대현교회의 예배에서 장로 길선주가 큰 능력에 사로 잡혀 설교하 였는데 사람의 죄가 그 자신을 꽁꽁 묶어 놓고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상징적인 표현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몸에다 밧줄을 칭칭 감고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몹시 괴로워하는 표현을 몸짓으로 죄가 무엇인지 선포했다. 이를 바라보던 청중의 다수가 죄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고백하였고, 몇몇은 마룻바닥에 나뒹굴며 울면서 죄를 고백하였다.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일어난 죄 고백의 사건은 장대현 교회에서 뿐 만 아니라 같은 기간에 사경회가 열리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여러 교회로(사창골교회, 산정현교회, 남문밖교회 등) 각각 나뉘어 사경회로 모였고, 나이 어린 남학생들은 숭실대학(academy) 예배실에서 사경회로 모였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였다.
2.회개의 내용
그 때 성령의 역사로 집단적으로 고백한 죄에 대하여 기록한 자료(<the korea mission field>)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지은 죄가 드러나고(revealing sin)”, “죄를 자각하고(conviction of sin)”, “죄 짐에 짓눌려서 크게 울고(wept under a burden of sin)”, “(죄로 말미암은) 심한 괴로움에서 -마룻바닥을 치고 옷을 쥐어뜯으며- 죄를 고백하고(confessing their sin in great agony)”, “진심으로 뉘우치고(truly repent)”, “죄 용서를 탄원(pleading for forgiveness)”하였다.
그러고 나서 죄용서의 기쁨을 얻고, “말씀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the eternal life which is in the word)”을 발견하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 믿음 안에서 “평화를 얻게 되었다(transformed into peace)”.
이 때 고백한 죄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였다. 마음에 담겨 있던 죄(미움, 시기, 질투, 증오심, 앙심, 심술, 교만), 밖으로 드러난 악한 행위(거짓말, 눈속임, 사기행각, 술, 담배, 도박, 마약), 신앙인으로 삼가 해야 할 직업(주막집)과 첩살이, 형사처벌을 받을 죄(절도, 강도, 간통, 방화, 살인)까지 낱낱이 고백하여서 “마치 지옥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비유하였다.
성령의 역사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서 까맣게 잊고 있던 지난날의 죄과를 -마치 활동사진 (영사기) 돌리듯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렸고 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인 범죄행위도 낱낱이 자백하였다.
지은 죄를 마치 토하듯이 고백한 회개의 열매로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1) 치유 사건이었다. 죄로 말미암아 병들어 있던 인간의 내면이 그 죄를 고백하면서 밖으로 토해내자 그 영혼이 정화되고 전인적으로 치유되었다.
2) 죄 고백은 삶이 변화되는 첫 걸음이었다. 부정직한 삶에서 정직한 삶으로 돌아선 것이다(예, 훔친 돈과 물건을 되돌려 준 것). 죄 고백에는 이렇게 윤리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3) 죄 고백은 이제까지 으르렁대며 미워하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서로가 먼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서 화해하였다.
이것은 관계성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또한 회개의 사회적 차원이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 께 대한 회개는 중생(거듭남)과 인간(개인)의 변화, 윤리의식에 대한 각성, 사회적 화해를 수반 하였다.
◊1909년 길선주 목사의 가족사진
3. 회개운동의 결실: 한국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확립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른 죄 고백과 신앙체험을 통하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선교사 무어(j. z. moore)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종교(불교)에서는 죄 고백과 죄 용서에 대한 역동적인 체험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기쁨과 평화도 결핍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한국인의 전통의식 속에는 죄에 대한 확실하고도 명백하며 또 심각하고도 진실한 이해가 없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다수의 한국인들도 스스로 말하기를 죄에 관하여 배우기는 했으나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깊이 뉘우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교사들은 이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서양과 동양 사이에는 서로 친밀한 “유사성”(affinity)도 없고 “공통분모”(common meeting ground)도 없으므로 한국인이 서양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신앙의 체험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기독교인이 되려는 동기를 세 가지로 보았다.
첫 째는 지금의 위험한 세파(世波)를 잘 헤쳐 나가고자 안전하게 보호받을 피난처를 찾아 서양 선교사가 있는 교회로 찾아오는 경우,
둘째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의 전통문화를 버리고 서양의 선진문명을 배워보려는 경우,
셋째는 영적인 갈증을 채우고자 기독교인이 되어 보려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동기 가운데서 그 어느 것도 죄 고백을 통한 신앙정체성의 형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았다.
그런데, 신앙각성운동을 통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지은 죄를 깊이 고백하고 크게 뉘우치는 신앙체험을 하자, 선교사들이 맨 먼저 놀랐다.
이제까지 파악해 온 바와 달리, 저들도 우리와 꼭 같은 신앙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그리스도인들 스스로도 이제야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서 어떤 이는 “내가 10년 동안 예수를 믿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과 나의 영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죄 고백과 회개로 깨끗하게 정화되어 맑고 순수한 신앙심성을 가지게 된 한국 신앙인들이 이제야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인식하였다.
선교사 크램(w. g. cram)에 따르면, 신앙각성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한국 교회의 성격(character)을 갖추게 하셨다’. 여기에서 확인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평양의 대각성부흥운동은 이미 기독교인이 된 교인들의 신앙을 새롭게 한 것인 바, 이 각성운동의 일차적인 목표는 교세확장을 위한 전도운동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백낙준과 이장식이 밝힌 대로, 평양의 대각성부흥운동은 ‘교인 수 증가나 교세확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고 이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또 삶이 바뀌는 윤리적 결단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개신교인 900명과 목회자 100명이 꼽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출처:국민일보)
4. 길선주와 1907년의 회개운동이 오늘의 한국 교회에 던지는 빛
‘생명의 성령이여 새롭게 오소서!’
길선주의 회개로부터 시작된 1907년 평양 대각성부흥운동은 오늘의 한국 교회에서 다시 일어나야할 신앙운동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그 때의 전쟁기간에(러일전쟁) “교회는 안전한 피난처”로 인식되었고 또 지식인들은 교회가 사회의 ‘공적 책임’ 을 담당하여서 국민의 윤리의식과 도덕정신을 바르게 세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걸었다는 점에서, 100여년이 지난 오늘의 교회가 이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많은 점에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자주 사회의 신망을 잃고 있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이여 새롭게 오소서!’ 기도를 드리며, 새로운 신앙각성을 통한 교회의 부흥과 사회적 책임을 위해 다시금 죄 고백과 회개를 하여야 한다.
글쓴 이: 장신대 교회사 임희국 박사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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