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타우브스 지음/이화영 옮김
“소피 블라인드는 낯선 방에 익숙하다.”
1969년 수잔 타우브스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출간했던 장편소설 《관 속에 누워 미국 가기》를 읽기 시작했다. 몇 차례 올라온 페친 박정자 교수님의 소개 포스트를 읽다가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어제 왔는데 오늘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제법 두꺼운 책이다.
원제는 ‘Divorcing(이혼)’으로, “남편과의 이혼을 판타지 기법으로 다룬 이 소설은 당대 최고 지성들의 섬세한 심리적 갈등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작가의 절친이었던 수잔 손택의 아들이자 문학평론가인 데이비드 리프가 2021년에 이 책을 재출간하면서 <뉴욕 리뷰 북스>에 썼던 글이 이 번역서의 앞장에 나와 있는데,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간 동구권 출신 유대인들의 의식과 정착 과정도 자세히 묘사되어 현대사의 일부를 읽는 듯한 즐거움도 준다.”
이 소설은 “힘겹게 눈을 뜬다. 낯선 방이다.”는 짧은 두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일단 나는 그 ‘낯섦’에 매료되었다. 이어서 한 장(두 페이지)을 채 읽기 전에 놀라움에 멈칫했다. 지금.
“소피 블라인드는 낯선 방에 익숙하다.”는 놀라운 문장 때문이다. 소피 블라인드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이 소설에서 화자이자 주인공 역할을 하는 여성의 이름이다. 그런데 하필 ‘소피 블라인드’라니? 그리고 “낯선 방에 익숙하다”니?
‘소피(Sophy)’란 ‘~학(學)’, ‘~지식 (체계)’의 뜻이 아닌가. 예를 들면, ‘필로소피(philosophy)’는 ‘철학’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어 낱말 ‘σoφíα(지혜)’에서 온 말로 라틴어로 ‘소피아(Sophia)’, 즉 최고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융 분석에서는 남성의 여성성(아니마)의 발달 4단계를 이브, 헬레네, 마리아, 소피아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블라인드(Blind)’라니? 블라인드는 맹인, 맹목, 눈가림, 눈멂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따라서 ‘소피 블라인드’는 그 이름 자체가 모순으로 분명 자신 안에 선명한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게다가 “낯선 방에 익숙하다”니?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반대어가 한 문장 안에서 사이좋게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결코 아무렇지도 않지 않을 것을 암시하면서…
첫 장부터 이 기막힌 문장의 두 겹 모순어법, 그 패러독스에 전율하면서 오늘밤 소설을 읽느라 밤을 샐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참 오랜만이다. 그러나 흥미로만 읽기에는 너무도 아픈 이야기일 것 같아서 벌써부터 가슴이 저리다. -임미옥-
『관 속에 누워 미국 가기』(p.278~)
유월절엔 강 건너 페스트의 아파트 2층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갔다. 란츠만 일가 모두 할머니 댁에 모여 유월절을 쇠었다. 먼 곳에 사는 랍비에게 시집간 고모들만 빼곤 집안에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결혼 전이라 할머니랑 살면서 병원에 나가는 베니 삼촌조차 그랬다. 삼촌은 종교 갖고 농담을 했고, 예배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종교란 뭔가 오래되고 낡은 것, 집에 두기는커녕 뒷방에 처박아 두기도 창피한 먼지 앉은 못생긴 가구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순 없는 어떤 것이었다. 할머니를 내다 버릴 순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면도 있었다. 종교는 거북해 하면서도 유대인인 건 자랑스러워들 했다. 왜 그랬을까? 모두들 유대인이 우월하다는 자긍심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소피가 왜 그런지 물어보면 식구들은 할 말이 궁해 언짢아했다.
유대인은 다른 족속들하곤 달라, 모르겠어? 지능이 뛰어나고, 그래서 종교가 없는 거야.
아빠는 당신이 과학적이고 무신론자인 것도 유대인인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진짜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전문가, 기술자, 예술가…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니체만 예외야. 그러면서 니체를 인용해 말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다이너마이트다.”
유대인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어린이는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소피도 특히 자기가 부다페스트의 행복한 환경에서 사는 건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조상들로부터 나온 경건한 유대인의 후손이라서인지 궁금하다.
하가다의 그림들만 갖고 본다면 소피는 파라오의 딸이 되기보다 소피 자신이 되는 편이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못된 아들 대목을 보며 곰곰이 생각한다. 그 아들이 이집트에 있었더라도 하느님이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한 추론은 산산이 흩어지고, 상상은 온갖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내가 만약 거기 있었다면… 만약… 내가 거기 있을 수 있었을까? 파라오 시대에 나는 어디 있었을까?
방을 가득 채운 친척들은 금송아지를 둘러싸고 춤추며 자기들을 풍요의 땅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모세를 원망하는 불손하고 비웃고 제멋대로인 이스라엘 사람들로 바뀌었다.
장난들 그만 치고! 아빠가 말한다. 열 시 뉴스를 듣고 싶은 것이다. 열 시 전에 끝내려고 기도가 빨라진다. 베니 삼촌의 라디오는 전 세계 모든 도시 소식을 알려 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런던과 도쿄까지.
1938년 봄에 할머니 댁에서 보낸 유월절은 대량 학살을 예감하는 모임과도 같았다. 어쩌면 유대인이라는 건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집트 노예 생활로 시작해, 하느님이 그들을 택해 인도했고, 그 뒤로 언제나 이방인으로 떠돌아다니며 이방인의 땅에서 하느님이 그들을 해방시킨 일을 기억하고,
예언자 엘리야를 위해 열어 둔 문으로 그가 들어와 술잔을 들이켜고 그 즉시(아니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길 기다린다.
예루살렘도 확실한 장소는 아니었다—하느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천국에 있을 수도 있고, 저 먼 나라, 영국이나 미국 반대편에 있는, 누구도 정말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농담에나 나오는 나라에 있을 수도 있었다.
언제 들어도 이상한 이야기였다. 예언자를 기다린다니, 사실은 뭔가 끔찍한 일, 커다란 벌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시끄럽고 어지럽고 농담이 오가는 식탁에 앉아 있자니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무슨 그로테스크한 코믹 오페라를 보는 느낌이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Latest posts by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see all)
- 7월 14일 “제 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 미주 탈북민 대회” - 6월 16, 2024
- 디아스포라 탈북민 티모시 조 - 6월 13, 2024
- “제 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 미주 탈북민 대회”(Los Angeles) - 6월 5,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