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공: 미래한국
(지난 2015년부터 시작돼 벌써 4번째 서울광장에서 진행되는 퀴어축제)
2019년 7월 16일 경기도의회는 성평등과 관련한 기본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의 핵심은 도내 공공기관 및 기업을 포함한 민간 안에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를 계기로 경기도내 교회들과 기독교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조례에 의하면 앞으로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동성애를 죄(罪)라고 설교할 경우 성평등위원회로부터 소환되어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위반한 이유로 조사를 받거나 시정을 요구받을 수 있다. 동성애 합법화의 토대를 만든 것이다.
물론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이를 부인한다. 경기도의회는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성명을 통해 ‘성평등위원회 설치는 권고사항이며, 조례가 말하는 성평등은 양성평등(남녀평등)이지,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 인권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기도가 성평등조례 제정을 위해 용역으로 발주한 경기도의 성평등 백서에는 ‘성평등은 양성평등을 넘어 성소수자의 인권’임을 밝히고 있어 시비를 낳고 있다.
권고라는 해명도 그렇다. 어떤 민간 기업들과 기관이 각종 인허가권과 규제, 지원을 하는 지자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할 수 있다는 걸까.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경기도의회가 개정한 성평등조례안에 ‘성평등이란 우리 헌법이 해석한 양성평등을 말한다’라는 간단하고 명백한 한 문장을 재의결로 추가하면 되는 사안이다.
기독교단체들과 교회들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 남녀를 차별하는 행위는 교회로서도 반대하기 때문. 그러나 5만 명의 온라인 청원이 이뤄지면 조례를 재검토한다는 경기도는 재검토 청원이 최근 5만을 넘어섰지만 거부했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좋은 입법과 조례는 무엇보다 해석에 다툼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법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법학의 기본개념을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깡그리 무시했다. 결국 주민들을 자신들의 조례 제정권의 주인으로 보지 않겠다는 독재적인 발상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도심 한복판에서의 퀴어축제. 일반인의 통념을 벗어나면서 사회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경기도의 학부모들과 관내 크리스천들은 문재인 정부의 경기도가 결국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해 주민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지자체의 기도는 이번 경기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2015년 7월 대전시는 성평등기본조례 개정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성소수자 지원 정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민주당 소속 권선택 시장의 의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한국기독교언론회와 대전지역 보수 기독교 단체가 반발하자 대전시는 지난 7월 23일 조례에서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 내용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여성가족부도 대전시에 공문을 보내 성소수자 권리를 명시한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랬던 여가부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양성평등’이라는 행정법 용어를 법에도 없는 ‘성평등’으로 바꿨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못했다’가 옳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 코드 인사로 채워진 국가인권위가 ‘남녀평등을 이유로 성소수자가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영향이 지대했다. 그 결과 여가부는 법률 용어인 ‘양성평등’을 버리고 비법률용어인 ‘성평등’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바뀐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같은 것일까.
이러한 성평등 주장에는 사람이 비록 생물학적으로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50개 이상의 사회학적 성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대한민국의 성평등은 이러한 젠더 이데을로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문제는 이 젠더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와 병립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동성애를 ‘성적 지향(志向)’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자꾸 끌린다’는 의미인데, 그런 지향성은 소아성애자나, 근친상간성애자, 심지어 동물성애자에게도 있다. 시체성애자도 있다.
그러면 왜 동성애만 예외인가? 성적 지향성이 있기에 권리로 합법화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근친상간의 권리, 소아성애자의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권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주권자의 일반의지로 성립하지 않고서는 입법화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찬반 간에 공방이 생긴다.
문제는 야비한 전체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그런 공방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공세를 ‘차별’이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원천 봉쇄하려 든다. 여기에 가족과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수호하려는 교회는 이들 전체주의자들에게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동성애 비판을 원천 봉쇄하려는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파시스트들이며 그들은 과거에 마르크시스트들이었고, 부르주아를 타도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을 하겠다던 시대착오적인 이들의 정치적 자녀들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런 한 줌의 파시스트들에게 끌려가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다시 경기도의 성평등조례로 돌아가 보자.
(경기도의 ‘성평등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포스터)
이 조례는 양성평등이라는 헌법과 법률의 용어를 내버리고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성평등’을 그 조례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평등은 양성평등과 같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지자체의 조례가 법률과 헌법의 개념을 교묘하게 희석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과 교회와 같은 단체에 마저 성평등위원회를 만들라고 압박한다. 경기도는 ‘권고’라지만, 행정관청의 권고를 무시할 수 있는 관할 내 사업자들이 얼마나 있겠나.
각종 면허와 규제, 지원을 하는 우리의 관청은 여전히 ‘관존민비(官尊民卑)’가 우세하다. 문제는 경기도가 쓸데없는 조례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중소기업이든 교회든 시민단체들은 우리 헌법과 법률이 제정한 남녀평등, 양성평등의 법적 효력 안에 있다. 이러한 법률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차별은 법의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왜 조직 안에 성평등위원회를 만들라는 것인가. 무엇보다 경기도의 학부모들과 교회, 기독교단체들이 비법률적인 ‘성평등’의 용어를 헌법과 법률 용어인 ‘양성평등’으로 바꾸라는 청원을 ‘같은 것’이라면서 가차 없이 묵살하는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민주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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