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월22일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방문했던 김대중과 당시 국정원장 이종찬 (사진/연합뉴스)>
이종찬 광복회장이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기미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는 연호 변경 추진을 앞두고 1948년 건국 부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8·15 광복절은 건국 75주년이 아니며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불러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종찬은 오는 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개최할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을 앞두고 미리 배포한 행사 인사말에서 “1948년 8월 15일을 부각해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시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표현을 쓰고 그의 업적에 대한 재조명의 필요성을 강조한 상황에 나온 발언이라 주목된다. 또 최근 광복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해 온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박사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종찬은 ‘1948년 건국론’은 곧 ‘이승만 건국론’이라며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에도 독설을 가했다.
그는 “이승만을 신격화하는 괴물 기념관을 광복회는 반대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며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은 1919년 기미 독립선언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종찬은 “1948년 건국론은 역사의 지속성을 토막 내고 오만하게 ‘이승만 건국론’으로 대체한 것”이라며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을 기회로 또다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해 ‘독재하는 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종찬은 광복회장 취임 직후에도 1948년 건국은 같은 해에 수립된 북한과 동일 선상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에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통일과국제평화센터장·매봉통일연구소 소장은 “이회장의 발언을 얼핏 들으면 마치 북한에 비해 정통성 우위에 서기 위해서라도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도 사실은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매도하기 위해 친북을 넣어 물타기 한 것이다.
“이 회장의 이런 역사 인식은 1919년 건국절을 주장함으로써 대한민국과 임정, 이승만과 김구를 대립 관계로 만들어 우파민족주의 세력을 이간질하기 위한 좌파의 역사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세력의 의도는 임정과 김구를 띄워서 대한민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전문에 명기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은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아 건국된 국가로,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종찬 본인이 민정당 국회의원일 때 임정의 법통을 담자고 주장해서 1987년 헌법전문에 수록하지 않았는가.
당시 고려대 총장이던 김준엽 교수도 그의 견해를 지지했고, 초대대통령 이승만도 대한민국의 건국을 임정에서부터 계산하여 ‘민국 30년’이라 했으므로 임정 법통론은 무난히 통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토·국민·주권이라는 국가의 실체적 구성 요건을 갖춘 실질적 국가로서의 시작은 1948년 8월15일이기 때문에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것이다. 1919년에 실질적인 국가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임시정부’라는 명칭을 붙일 필요가 없고 이후의 독립운동도 필요 없는 것이다. 국가가 있는데 뭣 하러 ‘임시’ 정부라 하고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 했다.
이종찬?
이종찬은 육사 출신으로 육군대위로 전역해서 1등으로 중앙정보부에 합격한 인물이다. 1980년에는 중정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5·18 관련 김대중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내며 민주정의당 창당에 적극 참여해 종로에서 11·12·13·14대 국회의원과 원내 총무·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전두환정부에서 가장 혜택 받은 정치인이다.
노태우 정부 말엔 여당인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김영삼과 경쟁하여 패배한 뒤 탈당해 새한국당을 창당했다가 정주영의 국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정주영과의 불화 끝에 다시 국민당을 나와 이번엔 김대중과 손을 잡았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았다. 김대중정부에서 안기부장이 되고 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개편되자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 문재인을 지지했다.
이같은 이종찬의 인생 이력을 보면 정권을 오가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누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도전에만 실패했지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그의 능력이라 치더라도, 위험한 문제는 대한민국 역사 인식에 있어서도 좌우를 넘나드는 기회주의적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현수막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빠져 논란이 일었다 (사진 /대통령실)>
이종찬이 이런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를 맞는 올해 8·15 광복절에 건국 75주년이라는 표현이 담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광복회는 정부의 모든 공식 문서에 서기(西紀) 대신 ‘대한민국 연호’로 연도를 표기해 올해를 ‘대한민국 105년’으로 하는 연호에 관한 법률 변경을 추진 중에 있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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