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단지 ‘선언’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건국’은 곧 완전한 ‘독립’을 전제로 한다.
‘이승만 죽이기’
<이종찬(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김덕영] 수익금 횡령 등의 의혹으로 2022년 전 광복회장 김원웅이 불명예 자진 사퇴했다.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오른 이종찬은 취임하자마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세우겠다’면서 1919년 임시정부 설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원으로 삼자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히 입장은 우선 ‘건국’에 대한 개념부터 뒤틀려 있다. 게다가 ‘임시정부 건국이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도 반대한다고 하니, 솔직히 앞뒤도 맞지 않는다. 이런 횡설수설하는 자가 광복회장 자리에 앉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걸 그대로 받아 적고 있는 일부 언론 또한 한심하기 그지 없다.
마침 영화 ‘건국전쟁’을 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회장이 갖고 있는 잘못된 ‘건국’에 대한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첫째, ‘건국’은 말 그대로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나라, 즉 국가는 무엇인가? 국가가 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 영토, 국민, 주권이 있어야 함은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이종찬의 말처럼 1919년이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시작이라면, 대한민국은 주권도 없이 시작된 절름발이 국가가 된다. 우리 역사에서 영토와 국민, 주권이 온전히 보장되어 국가로 출발한 시점은 당연히 1948년 8월 15일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둘째, 국가란 단지 ‘선언’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했던 이승만의 경우에도 국제연맹과 같은 공인된 국제 회의 참석에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1919년 1차 대전이 끝나고 국제연맹 창립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을 즈음, 이승만은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던 미국의 우드로 윌슨 행정부로부터 여권과 비자 발급까지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회의 참석은 물론이고 ‘독립 청원서’의 접수까지도 거절 당했다. 윌슨과의 개인적 친분을 갖고 있던 이승만에게는 국제 정치의 비정한 현실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1945년 해방 직전까지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는 모든 망명 정부의 승인을 거부했다. 국가의 건설에 앞서서 단지 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들이 국민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망명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임시정부가 지니고 있는 내부적 한계를 명확히 보지 못하고 있다. 1919년에서 1920년 사이 파리 강화 회의와 국제연맹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임시정부 내의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은 볼세비키의 지원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임시정부 전권대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동휘, 김립 등은 고려공산당 지원 등을 요구하며 레닌으로부터 2백 만 루블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금화로운 40만 루블, 한화로 900억 원에 해당되는 상당한 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상해 임시정부로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자금의 유용을 의심받자 국무총리 이동휘는 사임을 통보하고 임시정부 파괴 공작에 나섰다.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는 김규식 등 52명의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참가했다. 그곳에서 김규식은 ‘공산주의 인터네셔널 만세’를 외쳤고, 현순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적 단결’이란 주제로 연설을 했다. 과연 이런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넷째, ‘건국’은 곧 완전한 ‘독립’을 전제로 한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비롯해서 근대 이후에 성립한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이 식민지 체제를 극복하고 독립을 이룩한 이후에 가능했다. 독립을 향한 희생과 투쟁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양동안 박사가 <건국 전후사>를 통해서 주장하고 있듯이,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해방’과 국가로서의 완전한 ‘독립’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이 널리 퍼기 시작했다. 그의 지적은 매우 의미심장한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건국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정립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 의하면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것’이며, 해방은 ‘구속, 억압으로부터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도 의미는 서로 달라서, 광복은 ‘Independence’, 독립이고, 해방은 ‘Liberation’으로 번역되고 있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는 것’과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는 것’은 어떤 민족이 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주권 국가로 독립하는 것을 뜻한다.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어떤 민족이 외국의 지배로부터 단지 벗어나는 구속의 제거만을 뜻한다.”
1945년 해방이 완전한 주권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패망만으로 국가가 완성된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를 증명하듯, 1946년 10월 유엔 총회를 참석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자격으로 이승만이 방문했을 당시 미국 국무부는 그가 정부를 대표하고 있지 않다는 자격 문제를 들어 유엔총회 참석을 불허했다.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주권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국민들의 주권 행사가 선행되어야 함을 뜻한다.
다섯째, 결국 나라를 세우는 ‘건국’이 얼마나 지난한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이룩되는 것인지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권국가로서 법을 만들고, 정부를 구성하고, 정치사회 제도의 근간을 세우는 일은 단지 ‘선언문’ 몇 장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다.
광복회장 이종찬의 1919년 임시정부 건국론은 일종의 정신 승리만으로 건국이 이뤄질 수 있다는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생각이 빚어낸 헤프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젠 보다 합리적 이성을 통해 국가관이 확립되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여섯째, 건국의 과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제대로 세우는 필수적인 요소다. 1945년 해방 이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은 소위 ‘임정봉대론’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좌우합작을 시도했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좌우합작’은 기만적인 공산주의 통일전선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좌우합작 전술에 넘어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빼앗긴 동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이미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좌우 논쟁으로 국력이 낭비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결코 우리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이다.
일곱째, 결국엔 ‘이승만 죽이기’가 아닐까? 광복회장 이종찬은 이 부분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 사업이 일방적이며, 심지어 김일성 우상화와 비슷하다고 막말까지 서슴치 않았다. ‘괴물 기념관’이란 말까지 나왔으니, 그의 심기가 어떤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민족을 파멸로 몰고 간 한국전쟁을 비롯해서, 지금까지도 북한 인민을 억압하고 무차별 살상하는 반인권적, 반민주적 존재이자 독재의 상징인 김일성을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이승만과 동일하게 인식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승만 우상화에 반대한다 했는데, 실제로 현재 우리 사회에 ‘이승만 우상화’를 걱정할 만큼 동상이나 기념물들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일부 기독교 좌파 세력들은 이승만의 동상 건립을 우상화를 금지하는 성경의 구절을 통해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교리 위에 세워지고 운영되는 미국 땅에 건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물들이 3,000여 개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라의 독립과 건국을 이룩한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은 역사에 대한 판단이지 신앙의 영역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이끈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동상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사회에서 무슨 우상화를 걱정한다는 말인가?
플라톤은 말했다. ‘그 나라에서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성하는 것이 곧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위해 교육하고 육성하는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이승만이란 건국의 지도자를 음해하고 실상을 왜곡해 온 지난 70년의 역사를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 모두가 성찰할 때이다.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건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광복회장 이종찬의 심술(?)을 더 이상 그냥 지켜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덕영 리버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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