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고수하였던 이승만의 정신»
«모든 남녀와 어린이끼지 막대기와 돌을 가지고라도 나와서 싸우라»
«문재인 저게 무슨 대통령이냐!»
(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 시민에게 인사하는 장면)
“우리는 단군의 후손으로 모두 형제요, 한 핏줄이나 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말자. 한 덩어리로 굳게 뭉쳐서 공산당을 몰아내고 기어이 남북통일을 완수하여 우리 삼천리강토에서 영원무궁토록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힘을 합쳐서 살아가자. 우리는 고대로부터 독립된 나라이니 완전무결한 독립을 되찾아야 하며, 죽을 수는 있어도 자유권을 포기할 수 없으며 더욱이 우리 민권의 자유만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상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1950년 10월 30일 유엔군과 한국군에 의해 탈환한 평양에서 10만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1950년 10월 29일 오전 9시 30분, 정일권 국군총사령관을 비롯한 군부요인들의 환영 속에 평양의 능라도 비행장에 도착한 75세의 노익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다음 날 1950년 10월 30일에, 무기를 숨기고 있는 패잔병이나 적색 분자가 끼어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 평양의 군중 속에서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이제부터 모두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십다” 라고 용감하게 외쳤다.
평양 탈환은 9월 27일, 맥아더 원수가 미 합참에게 북진을 승인받아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있었고, 10월 7일에는 유엔이 북진을 결의함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보다 먼저 국군 1군단이 10월 1일, 동해안에서 38선을 돌파하면서 북진을 시작했다. 유엔군은 10월 9일, 서부지역에서 38선을 돌파하며 북진을 시작했다.
미 1군단의 북진은 10월 9일 오전 9시, 제1기병사단이 북한군 2개 사단이 배치된 금천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금천은 평양방어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에 북한군의 항전은 결사적이었다.
1950년 10월 14일, 금천에서 북한군 2개 사단을 격멸한 유엔군은 평양을 향해 파죽지세의 진격을 계속했다. 1기병사단은 평양까지의 최단거리이며, 가장 양호한 기동공간을 가진 축선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미 1기병사단은 서흥(16일)-사리원(우회)-황주(17일)-평양남측 흑교리(18일)-대동강 남쪽 도달(19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마침내 10월 19일 11시쯤, 국군 1사단 12연대가 대동교 동쪽 100m 지점에 있는 동평양의 선교리로 진출했다.
평양탈환작전은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한 이래 만 11일 만에 국군 1사단 11·12연대가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의 5기병연대가 동평양을, 국군 1사단 15연대와 국군 7사단 8연대가 본평양을 각각 점령함으로써 종료됐다.
(이승만 대통령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
이승만은 6.25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에게는 무기와 탄약(more arms and ammunitions)’과, 소총지원을 요청하였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었던 국민들을 향하여는 “모든 남녀와 어린이까지 막대기와 돌을 가지고라도 나와서 싸우라”고 하며 전의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
비록 북진 통일을 완성하시키 못하였지만 노익의 이승만은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움직였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국민들의 마음에 용솟음치는 용기를 부어 넣어 주었다.
이것이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국가의 수장으로서 모습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그 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일치 단결하여 국가 발전에 최선을 다하였고, 호시탐탐 한국을 적화하기 위해 수많은 도발을 벌였던 김일성 일가의 만행에서 나라를 지켜왔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형성되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세계 어느 나라도 공산주의의 모순과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처음부터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고수하였던 이승만의 정신위에 세워진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모든 남녀와 어린이끼지 막대기와 돌을 가지고라도 나와서 공산당과 싸우라고 외쳤던 이승만 정신이 오늘 날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악마같은 북한의 검은 손에서 지금까지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24일 나라를 지키려다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도 불참한 대통령의 입에서 놀랄만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국가 기념식에 불참한 것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문재인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서해 수호의 날’ 추모 메시지를 띄웠다.
“제2연평해전의 영웅 윤영하 소령과 다섯 장병들, 천안함 46용사와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우리의 소중한 아들들을 깊이 추모합니다. 모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웅들입니다” 라는 글을 올렸는데, 그야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문재인의 민낯을 여실하게 보여 주는 글이었다.
추념식이 시작한 4년 내내 단 한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서치혀로 사기를 친 아들들이 공산당과 싸우다 순국하였음에도 아들들의 추념식에는 참석치 않으면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는 공산당 월맹의 호치민 묘에 참배를 하였던 문재인이가 이런 글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뒤이어 “우리는 그 어떤 도발도 용서할 수 없으며 힘에는 힘으로 더 강력하게 응징할 것입니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할 것” 이라는 문재인의 말은 국가를 허물고 말겠다는 문재인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문재인이 말한 싸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손자병법의 모공(謨功)편을 인용한 것인데, 물론 백 번 싸워서 백 번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최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최상의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일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좌파들에게는 손자병법이 마치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왜곡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술 더 떠서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말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완용은 아무리 나쁜 평화(한일병합)도 전쟁(조일전쟁)보다는 낫다는 것을 보여준 평화주의 실천자가 된다.
손자가 말하는 모공(謨功)은 전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 위세로 적을 굴복시키거나, 고도의 심리전과 이간책 그리고 정치적 술수, 외교적인 교섭으로 상대의 뜻을 꺽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방법으로 상대국을 굴복시킨 리더들이 있는데 한 예로 굳건한 리더십과 탄탄한 경제력으로 경제적 압박과 군사비 경쟁을 통해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악의 제국 소련을 굴복시킨 레이건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와는 반대로 수모에 가까운 대북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북한에 상납하는 일을 벌였고, 고도의 심리전과 정치적 술수의 외교로 북한을 함몰시켜야 함에도, 오히려 한국의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그런 반면에 북한은 미북회담이 결렬된 후 김정은이는 중국과 러시아와 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있다. 미국과의 회담 전에 중국을 먼저 방문하였었고, 현재 김정은이는 러시아 방문을 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한국은 70년 동안 지켜왔던 외교, 국방,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중이고, 북한은 충실한 대변인 문재인의 도움으로 단 한가지도 포기하지 않은체 자신들의 야욕을 채워가고 있다.
결국 서해수호의 날에 문재인이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택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김정은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게 만들어 줄 것이고, 반면에 한국은 싸우지 않고 스스로 굴복하겠다라는 말로 밖에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남녀와 어린이들까지 모두 다함께 한국당의 청년 김준교가 문재인을 향해서 일갈하였던 “저런게 무슨 대통령이냐” 하는 소리를 외쳐야 할때가 목전에 온것 같다.
“저딴게 무슨 대통령이냐!”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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