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대교체인가, 대안이념 재건인가
1) 한국의 포퓰리즘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가운데, 한국은 민주주의를 확대, 심화하는 예외적 국가인가?
이 글은 한국에서도 집권 86세대가 주도하는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장집과 같은 자유주의 정치학자들조차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체제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있다면, 그 이념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자유주의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구상이어야 한다.
비판과 반대는 다르다. 포퓰리즘은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반대할 뿐이다. 더 나은 정치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자유주의에도 미달한다.
‘집권 86세대’는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었을까?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대세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열성지지자들의 역할, 언론매체의 문제, 역사의 정치화 등 보다 풍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는 앞에서 살펴본 세대 간 불평등과 ‘집권 86세대’의 관계만 고찰해보고자 한다.
앞서 세대 간 불평등, 즉 ‘60년대생의 행운’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될 때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임을 확인했다. 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보다 성장기의 마지막 혜택을 입은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86세대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다.
이것을 구조적 위기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면, 보편적 대안을 고민하기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사익을 추구하게 된다.
집권 86세대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반기득권’이라는 구호로 동원하지만 반경제학적 무능으로 인해 해법은 없다. 재벌체제로 인한 노동자 내부의 격차 확대가 지속된다. 그러나 그 원인을 다시 보수 기득권 탓으로 돌린다.
상대적 고임금과 고용이 보장된 상황에 있는 수도권의 대졸자 전문직, 사무직 계층이나 부산, 울산, 경남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계층은 ‘정규직 과보호’를 외치는 보수 신자유주의자들보다, 경제적 대안은 없지만 ‘반보수’에 몰두하는 집권 86세대를 선호한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비판적 지지’의 논리가 나타난다.
성장기 끝물에 재벌, 공공부문에 입사한 60년대생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익추구와 집권 86세대의 정치적 사익추구가 기묘하게 결합한다. 때로는 서로 견제하지만, 때로는 영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2) 세대교체인가, 대안이념 재건인가
조만간 있을 21대 총선에서 집권 86세대는 어떤 성적을 거둘까? 세대론으로 흥한 자, 세대론으로 망하는 것일까. ‘586용퇴론’이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고, ‘구국의 환갑대오’라는 조롱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인영, 우상호 등은 86세대가 기득권이라는 주장에 모욕을 느낀다면서 용퇴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객관적 상황을 볼 때 86세대의 국회의원 비율은 조금 줄 수 있을지 모르나, 60대(686)가 된 그들의 영향력은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 다음 대선에는 첫 86세대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86세대를 기득권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86세대가 1990년대에 이미 사용했던 논리다. 게다가 진보를 자임하는 집권 86세대는 세대론적인 비판을 보수적 논리로 치부한다.
따라서 한계적인 도덕적 비판보다는, 객관적인 정세분석을 통해 문재인 정권으로 표상되는 집권 86세대의 ‘진보성’이 파산했음을 평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음 세대가 대안 이념을 바탕으로 집권 86세대와 단절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2000년대 학번인 필자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80년대 학생운동을 막연히 동경했지만, 노무현 정권의 변절한 86세대 정치인들이 미웠다.
한 86세대 교수님은 학생운동을 한다는 말에 정치인이 되고 싶냐고 묻더니, 내 친구들은 출세하려고 운동했다며 결국 이용당할 뿐이라 걱정하셨다.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순수성을 의심받는 이유가 86세대 때문이라 생각했다.
60년대생은 아니지만 86세대를 대표하는 유시민과 같은 ‘자유주의자’들을 미워했다. 경제적 객관성과 합리성을 근거로 불평등과 노동자의 아픔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한 술자리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와 도룡뇽의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친구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통령 노무현은 비판하지만, ‘바보’ 노무현, ‘비주류’ 노무현은 지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유시민은 자유주의적 지식인에 미달하는 정권의 나팔수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자기의 이익,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는 객관성이나 공정성도 무시하는 포퓰리즘과 자유주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의 20대는 자유주의를 잘 몰랐기에, 자유주의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만 있었다. ‘자유주의를 지양하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에도 미달하는 포퓰리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이런 인식의 한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반보수투쟁에만 몰두하는 것의 문제점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집권 86세대는 자신의 운동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포장하지만, 그들은 1980년대 민중운동과 학생운동을 대표할 수 없다.
그 시절 이름 없는 수많은 청춘들은 분명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풍요로운 사회를 꿈꿨으리라. 그러나 포퓰리즘은 정반대의 결과를 만든다.
문재인 정권이 리버럴 진보가 아니라, 타락한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그 시절의 꿈을 계승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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