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뉴스

‘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서’ (4) 평남 구성군(龜城郡)길상(吉祥)교회

<평안북도> *로버츠(나부열)선교사가 담임했던 길상 교회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은 조선조 세조 때 정주에서 분리되었는데, 이곳에는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서 쌓은 성들이 있었는데, 그 성들로 둘러 막힌 산줄기들이 거북이 잔등을 닮았다고 해서 그 성을 구성(龜城)이라고 불렀다. 구성군(龜城郡)은 선천, 정주 등 과거에 기독교가 강성했던 지역들과 연접해 있었는데, 특별히 구성 서북쪽에 의주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가장 빨리 들어온 곳이다. 의주의 초기 기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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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3)’ 고정(高町)교회(평양 소재)

<고정교회가 있었던 부근에 세워진 개선문> 고정(高町)교회는 1923년에 세워진 교회로서 고정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을 살펴보면 해방 전에는 이동희 목사, 김영로 목사․ 정명채 (鄭明采) 목사․ 이의주 목사․김인준 목사님 등이 고정교회를 담임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정명채 목사는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정주 오산 중학을 졸업하고 의주 양실(養實)학교 교사로 있을 때, 일어난 3․1 만세운동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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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서'(2) 안악읍(安岳邑)교회(황해도)

<안악과 관계가 깊은 백범 김구 선생> 황해도 안악군은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황해남도에 속해 있으며, 안악군은 원래는 버드나무 양(楊)자를 써서 양악군(楊岳郡)이라고 했다. 양악군은 ‘버드나무가 우거진 양산대 아래에 있는 마을’ 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고려 초에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유리한 산(구월산)을 끼고 있는 편안하고 안정된 고을’ 이라는 뜻의 안악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안악군은 일제 강점기에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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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1) ‘평남 대동군 소재 송산(松山)교회’

<1920년대 송산교회를 담임했던 베어드 선교사. 숭실대학 설립자> 송산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古平面) 송산리 196번지로서 김일성의 출생지인 평양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 소재하고 있었다.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서 김일성 자신이 송산교회에 다녔다고 말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른들이 례배당에 갈 때면 아이들도 따라 가서 례배를 보군 하였다. 신자의 대렬을 늘이려고 례배당측 에서는 이따금씩 아이들에게 사탕도 주고 공책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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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적 지향·차별금지 ‘평등법’(Equality Act) 하원 통과

지난 2월 25일 미국 하원은 고용, 주택, 공립학교 등에서 성 소수자(LGBTQ) 개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연방 민권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는 법안인 평등법(Equality Act, H.R. 5)을 찬성 224(민주당 221, 공화당 3)명, 반대 206명(공화당) 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해 고용· 주거· 공공시설 접근· 기타 서비스상의 차별을 금지하고 성 소수자(LGBTQ)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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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한국 기독교

한국교회는“참혹한 식민 통치 아래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인들”이었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절망을 모르는 민족으로 살아남게 한 힘이 바로 한국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교회의 힘은 성서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이었다. 성서의 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독교 신앙의식은 겨레사랑의 민족의식과 하나가 되어 세계도 깜짝 놀란 함성을 토해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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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과 기독교

2.8 독립선언서와 1920년 3월 26일 됴쿄 형무소에서 출감한 독립선언의 주역들 1946년 북한의 3‧1절 행사  1946년 북한의 3‧1절 행사 1946년 2월 18일, 북한을 장악한 소비에트와 공산정권은 평양 역 앞에서 3‧1절 기념식을 거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평양의 교회들은 참가를 거부했고 장대현교회에서 독자적으로 기념예배를 감행했다. 이유는 북한 공산정권이 3·1운동이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고, 33명의 민족주의자들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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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114주년 기념예배

길선주 목사의 회개의 제사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시발지 장대현교회의 당회원. 왼쪽부터 김선두 목사, 정의로 장로, 마포삼열 목사, 길선주 목사, 이길함 목사, 옥경숙 장로, 위참석 장로. 뒤줄 왼쪽부터 김성택 목사, 박치로 장로, 안봉주 목사. (사진제공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1. 평양 대각성운동의 시작이었던 길선주의 회개 길선주의 회개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도사경회’기간에 일어났다. 이번 사경회는 1907년 1월 2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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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114주년 기념예배’

⌈평양 기독교의 수호자 조선의 바울 김창식 목사⌋ 조선교회의 1호 목사인 김창식(金昌植 1857~1929.1.9)은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며 성장한 김창식은 농사일을 하다가 나이 21살에 세상을 알기위해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도는 방랑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지게꾼, 막노동꾼 머슴살이, 마부 등을 하면서 전전하다가 마침내 나이29세 되던 1886년, 박노덕과 결혼을 하면서 정착생활로 접어들게 되었다. 당시 장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