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포로 출신 목회자 김창식 목사- 1950년 7월 말경에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인민군으로 끌려갔다. 인민군복을 입고 기차를 타고 남으로 달려 내려오던 중 UN군 제트기 4대가 나타나 융단폭격을 수차례 가하였다. 졸지에 나는 바로 앞에 나의 키 두 배나 깊은 계곡이 있어 머리만 안 맞으면 살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양 팔을 쭉 뻗고 뛰어내렸다. 순간 나는 죽었다,…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6.25전쟁과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
이상명 박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 전쟁>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침공한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이며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동란으로 한반도가 초토화한다. 6.25전쟁 초반 승기를 잡은 북한이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Continue Reading李東馥 컬럼 “위헌적인 불법문건인 ‘6.15 선언’은 廢棄되어야 한다” (3)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 4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Continue Reading李東馥 컬럼 “위헌적인 불법문건인 ‘6.15 선언’은 廢棄되어야 한다” (2)
조선노동당은 ‘규약’의 ‘전문(前文)’에서 조선노동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임을 명시하고 있다. ‘규약’에 의하면 조선노동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하고 “모든 당사업의 기본원칙으로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관철”하며 “온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테리화를 추진”하게 되어 있다. 나아가서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고 공산주의 사회로 건설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적화통일’이 조선노동당의…
Continue Reading李東馥 컬럼 “위헌적인 불법문건인 ‘6.15 선언’은 廢棄되어야 한다 (1)”
2020년6월15일은 20년 전인 2000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5억 달러 플러스 알파라는 거액의 미화를 국가정보원을 통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에게 뇌물로 건네주고 그 대가로 평양에서 이루어진 김정일과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선언’에 합의하여 발표한 날이다. 과거 남북간에 이루어진 모든 합의들이 그렇게 된 것처럼 북한은 문제의 소위 ‘6.15 선언’도 이행에 호응하지 않아서 이 역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6.25의 기억”
♦1950년 10월 폐허화된 남대문 주변 시가지의 모습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여섯 살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때 보고 느낀 몇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오히려 어린 마음에 각인된 이미지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같다. 첫 기억은 우리가 살던 집은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한옥이었는데 하루는 주위가 뭔가 뒤숭숭했다. 평상시와 다른 느낌인데 뭔지 알 수…
Continue Reading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회장 정용봉 “국군포로는 고향에 돌아와야 합니다”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정용봉 회장 올해 6.25일은 한국전쟁(1950-1953)이 발발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 새벽 13만5천명의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불법 남침하였습니다. 휴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되었고 총성은 멎었습니다. 휴전회담 당시 가장 큰 논쟁꺼리는 포로교환에 관한 사항으로 이 문제로 3년이란 회담이 걸렸습니다. 북한과 중공은 포로들을 전원 일체로 교환하기를 원했고, UN군은 포로들의 자유선택권을 주장했습니다. 휴전협정이 서명됐을 때 북한정권의 억류된…
Continue Reading7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한 자들 “국군 포로”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서울 금천구지회 회원들이충북 충주시 탄금대 ‘팔천고혼 위령탑’을 찾아 한국전쟁 국군포로 송환을 북한에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70년전의 6.25 한국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남겨 놓았다. 그 가운데 우리들이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하고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 북으로 납북이 된 납북 가족과 전쟁 중에 포로가 되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의…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70 여년 전의 6.25를 상기 하면서”
1950년 여름, 제가 서울 동대문 국민학교 2학년때 참혹한 동족 상쟁의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홍역을 앓던 처지였고 해방 후 겨우 미아리 고개를 넘어 피난이라고 간 곳은 우이동, 지금의 수유리였고, 잠시 머물려 했던 집 주인이 그 지역 내무서장이어서 우리는 두어 주 밖에 지내지 못하고 , 아현동을 거쳐 삼각지 로타리로 급히 이사를 하여 9.28 서울 수복때까지 거주하게 되었다. 따발총을 든 괴뢰군을 아현동 사거리에서 본 기억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갔다고 들었고, 당시 부친은 대한 청년단의 일원으로 피해 다니시고 같이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에는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으나, 세월이 가면서, 전란에 의한 피난 생활과 국가적 손실로 인한 모든 국민적 고통속에 차츰 공산 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일생동안 자신이 피땀 흘린 적 없이, 친구의 도움으로만 살았다는 맑스 레닌의 머리 속에서 무슨 훌륭한 철학과 생각이 나왔겠는가? 비록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생산 된 모든 물질을 다 같이 나누어 먹어야 공평하다는 공산주의의 허구, 그런 사상을 온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강구 해서라도,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처단하는 운동, 즉 공산혁명은 타당하다는 논리를 가진 자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다. ♦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스탈린. 김일성. 모택동 구 소련이 망하고, 이제 공개 된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남한을 침공 적화 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원조와 허락을 구걸한 북한의 김 일성의 사실들은 끝에 소개 하는 동영상에서 폭로 되고 있으며, 혹자는 남한이 북침했다는 정신병자들 같은 거짓 마저 우리는 알게 되었다. 김일성은 해방 후 80 여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쏘련군이 통치 하고 있던, 북한에 들어오자마자, 스탈린의 지원으로 북한 정권을 세우고, 토지 등 모든 재산을 몰수 하여 공산군을 만들어 남침 계획을 철저히 준비하고, 소련으로 부터 필요한 많은 무기를 받았다. 아무 준비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던 그 당시의 남한은 정말 무방비 상태의 국가였고, 소련, 중공, 북한은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기전에 속전 속결로 2달 이내에 남한 전체를 점령 한다고 계획을 세워 낙동강까지 쳐 내려 왔으나, 맥아더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저지 되었다. 허나 60만의 중공군과 소련및 북한 공산군에 의해 남한은 정말 완전히 페허가 되었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었음은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1.4. 후퇴 전 어느 겨울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필동에 있는 큰 집에 갔더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사촌 큰 누님이 당시 일신국민학교 6학년생으로, 학도 호국단으로 전쟁 터로 떠나는 준비로 미수가루, 금계랍 등을 배낭에 넣고 있는 큰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4 후퇴 땐 인천항에서 당시 아버지의 친구이신 “지중세” 인천 시장님 가족과 많은 피난민들이 미군 LST를 타고 떠났지만, 육로로 떠난 아버님 일행을 부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인천항을 떠났다. ♦1950년 1.4 후퇴당시 빅토리아 호의 피난민들 풍랑이 심한 제주도 근해에서 타고 가던 배가 고장이 나서 밤새도록 출렁이며 갑판 위의 모든 피난민들의 짐들은 파도에 휩 쓸려 바다로 떠나 버리고, 선장 한사람 빼곤 모두 뱃멀미로 토하고, 아침에 인천을 떠난지 일 주일만에 육지에 내리니 정신이 몽롱했다. 우리 가족이 탄 배가 군산까지 갔을때, 부산에 너무 많은 피난민 집중으로, 제주도로 가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부산으로 가는 다른 선박으로 바꾸어 탔으나, 그 배마저 여수까지 갔을때 정부에서 피난민은 모두 제주도로 가라 해서, 할 수 없이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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