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당은 ‘규약’의 ‘전문(前文)’에서 조선노동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임을 명시하고 있다. ‘규약’에 의하면 조선노동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하고 “모든 당사업의 기본원칙으로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관철”하며 “온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테리화를 추진”하게 되어 있다. 나아가서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고 공산주의 사회로 건설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적화통일’이 조선노동당의…
Continue Reading[글쓴이:] 위드코리아USA 편집국
李東馥 컬럼 “위헌적인 불법문건인 ‘6.15 선언’은 廢棄되어야 한다 (1)”
2020년6월15일은 20년 전인 2000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5억 달러 플러스 알파라는 거액의 미화를 국가정보원을 통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에게 뇌물로 건네주고 그 대가로 평양에서 이루어진 김정일과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선언’에 합의하여 발표한 날이다. 과거 남북간에 이루어진 모든 합의들이 그렇게 된 것처럼 북한은 문제의 소위 ‘6.15 선언’도 이행에 호응하지 않아서 이 역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6.25의 기억”
♦1950년 10월 폐허화된 남대문 주변 시가지의 모습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여섯 살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때 보고 느낀 몇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오히려 어린 마음에 각인된 이미지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같다. 첫 기억은 우리가 살던 집은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한옥이었는데 하루는 주위가 뭔가 뒤숭숭했다. 평상시와 다른 느낌인데 뭔지 알 수…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70 여년 전의 6.25를 상기 하면서”
1950년 여름, 제가 서울 동대문 국민학교 2학년때 참혹한 동족 상쟁의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홍역을 앓던 처지였고 해방 후 겨우 미아리 고개를 넘어 피난이라고 간 곳은 우이동, 지금의 수유리였고, 잠시 머물려 했던 집 주인이 그 지역 내무서장이어서 우리는 두어 주 밖에 지내지 못하고 , 아현동을 거쳐 삼각지 로타리로 급히 이사를 하여 9.28 서울 수복때까지 거주하게 되었다. 따발총을 든 괴뢰군을 아현동 사거리에서 본 기억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갔다고 들었고, 당시 부친은 대한 청년단의 일원으로 피해 다니시고 같이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에는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으나, 세월이 가면서, 전란에 의한 피난 생활과 국가적 손실로 인한 모든 국민적 고통속에 차츰 공산 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일생동안 자신이 피땀 흘린 적 없이, 친구의 도움으로만 살았다는 맑스 레닌의 머리 속에서 무슨 훌륭한 철학과 생각이 나왔겠는가? 비록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생산 된 모든 물질을 다 같이 나누어 먹어야 공평하다는 공산주의의 허구, 그런 사상을 온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강구 해서라도,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처단하는 운동, 즉 공산혁명은 타당하다는 논리를 가진 자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다. ♦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스탈린. 김일성. 모택동 구 소련이 망하고, 이제 공개 된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남한을 침공 적화 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원조와 허락을 구걸한 북한의 김 일성의 사실들은 끝에 소개 하는 동영상에서 폭로 되고 있으며, 혹자는 남한이 북침했다는 정신병자들 같은 거짓 마저 우리는 알게 되었다. 김일성은 해방 후 80 여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쏘련군이 통치 하고 있던, 북한에 들어오자마자, 스탈린의 지원으로 북한 정권을 세우고, 토지 등 모든 재산을 몰수 하여 공산군을 만들어 남침 계획을 철저히 준비하고, 소련으로 부터 필요한 많은 무기를 받았다. 아무 준비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던 그 당시의 남한은 정말 무방비 상태의 국가였고, 소련, 중공, 북한은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기전에 속전 속결로 2달 이내에 남한 전체를 점령 한다고 계획을 세워 낙동강까지 쳐 내려 왔으나, 맥아더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저지 되었다. 허나 60만의 중공군과 소련및 북한 공산군에 의해 남한은 정말 완전히 페허가 되었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었음은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1.4. 후퇴 전 어느 겨울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필동에 있는 큰 집에 갔더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사촌 큰 누님이 당시 일신국민학교 6학년생으로, 학도 호국단으로 전쟁 터로 떠나는 준비로 미수가루, 금계랍 등을 배낭에 넣고 있는 큰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4 후퇴 땐 인천항에서 당시 아버지의 친구이신 “지중세” 인천 시장님 가족과 많은 피난민들이 미군 LST를 타고 떠났지만, 육로로 떠난 아버님 일행을 부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인천항을 떠났다. ♦1950년 1.4 후퇴당시 빅토리아 호의 피난민들 풍랑이 심한 제주도 근해에서 타고 가던 배가 고장이 나서 밤새도록 출렁이며 갑판 위의 모든 피난민들의 짐들은 파도에 휩 쓸려 바다로 떠나 버리고, 선장 한사람 빼곤 모두 뱃멀미로 토하고, 아침에 인천을 떠난지 일 주일만에 육지에 내리니 정신이 몽롱했다. 우리 가족이 탄 배가 군산까지 갔을때, 부산에 너무 많은 피난민 집중으로, 제주도로 가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부산으로 가는 다른 선박으로 바꾸어 탔으나, 그 배마저 여수까지 갔을때 정부에서 피난민은 모두 제주도로 가라 해서, 할 수 없이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 한국전쟁과 적화현주소”
70년전 6.25 주일새벽 4시. 북괴는 일제히 기습 남침했다. 웅진-개성-포천-춘천-동해안 강릉-상륙작전. 남진을 계속하여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 경부선 도로와 철도를 주 공격 루트로 수원-조치원-대전-추풍령-왜관-공주-전주-군산-목포-하동-진주-가야를 7월 말에 점령 했다. 낙동강 전선(미 8 군 Walker Line)방어작전, 포항, 왜관, 마산, 낙동강 전투는 피아간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지만 반격의 시간을 벌었다. 이때 학도병들은 “펜 대신 총을 달라” 고 하며 나라를…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REMEMBER THE KOREAN WAR”
Do you remember the Korean War? It was 70 years ago on June 25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North Korea launched an unprovoked invasion to the Republic of Korea. This war lasted for three years and one month. North Korea’s Kim, Il-sung, grandfather of current dictator Kim, Jong-un, attacked the Republic of Korea…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 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어릴 적 내가 본 피난민 생활”
♦6·25 전쟁 당시 군인과 민간인 20여만 명을 대피시킨 흥남철수 1950년 12월 22일 부모님과 5남매가 흥남부두에서 빅토리아 호를 타고 거제도에 도착, 원주민의 도움으로 산중턱에 오두막을 짓고 피난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흥남에서 태어나 그곳의 기억은 없지만 거제도의 유년시절은 기억에 남는다. 곧잘 아버지는 형과 나를 산속 폭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서 수영하며 놀다 집에 갈 즈음에 아버지는 등을 밀어주시며 “이 놈 많이…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 한국전쟁 70주년 상기예배 및 기념대회 ” 파로호의 소년병”
– 용문산에서 파로호까지 1- 5월 20일 첫새벽, 7연대에도 반격 출동 명령이 하달됐다. 소년은 소대원들과 주먹밥과 멀건 시래깃국, 미군 측에서 제공한 C-레이션 등으로 간단 신속하게 식사를 마쳤다. 중대 막사 앞에 소대별로 도열한 12중대원들은 군장검사와 무장 상태를 점검 받고, 용문산 북쪽 427고지를 향해 출발했다. 배가 고픈 소년은 걸으면서 새벽 식사 시간에 따로 몇 개 챙긴 주먹밥을 선임들…
Continue Reading남가주범교민 6.25 한국전쟁 70주년 기념대회 “소년병에서 일병으로”
«용문산에서 파로호까지 2» 소년은 북한강 청평호 남안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 댐을 건너 하천, 상천, 상색을 지나 가평읍에 다다랐다. 패주하는 중공군 뒤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체들이 남겨졌다. 5월 하순의 땡볕 아래 강안을 따라 적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부패하며 부풀어 오른 배가 터질 때마다 옷섶을 비집고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살찐 쉬파리 떼가 시체와 생사람을 가리지 않고 까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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