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 선교사 가족 (1910년경) <원산 대부흥운동과 하디의 통회>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되어 기독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까닭이다. 그런데 이 평양 대부흥운동 이전인 1901년 원산에서부터 이미 부흥운동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이 기간을 통칭 원산 대부흥운동 기간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부흥운동은 영적 각성…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 114주년 기념예배’
[한국초대교회 회개운동] <백만인 구령운동 (1909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에도 부흥운동이 한반도에서 수차례 지속되었다. 그 대표적인 1909년에 시작된 백만인 구령운동이다.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은 시들어 가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불길을 안타까워하면서 일련의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7년 1월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부터 6월까지 절정에 달한 후 이내 시들기 시작했다. 1908년에 접어들어 교회는 성장하면서도 1907년 영적각성운동은 현격하게 줄어들어 1909년…
Continue Reading미주한인 정치인후원위원회 ‘미주한인 정치인 당선을 위한 감사예배’
28일 미주한인 정치인후원위원회 주최로 은혜한인교회 야외 행사장에서 미주한인 정치인 당선 축하를 위한 모임이 있었다. 이 날 행사는 3선에 성공한 최석호 가주 하원의원, 연방의회에 동반 입성한 미셸 박 스틸· 영 김 당선자와 풀러튼 시의원에 입성한 프레드 정 당선자가 참석했다. 미주 한인교계 지도자들과 사회일반 단체장들과 박경재 LA 총영사가 자리하여 축하를 하였고, 감사예배는 은혜 한인교회의 한기홍 목사의 설교와…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 서부지부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114주년 기념 예배’
〈한국초대교회 회개운동〉 ◊평양 장대현교회의 회개운동과 대부흥운동 평양대부흥운동은 아시아에서 강력한 성령의 현시였다. 길선주 장로는 산정현교회에서 1906년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도 사경회가 열렸다. 1월 6일부터 저녁집회가 시작되었다. 낮에는 평양시내 성도들은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저녁에 열리는 저녁집회에는 평양시내 성도들도 참석이 허용되었다. 그 놀라운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 114주년’ (4)
〈한국초대교회 회개운동〉 1. 원산 부흥운동(1903~1906년)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원산지역 주재 선교사들이 모여 가진 기도회 동안에 발흥한 원산부흥운동은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1907년 1~2월 평양에서 ‘대폭발'(big bang) 하게 했다. 원산부흥운동이 발흥했던 기도회는 두 명의 무명 여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중국의화단 사건으로 원산으로 피신해온 여 선교사 화이트(Mary Culler White)와 카나다 장로교 출신 여선교사 맥컬리(Louise Hoard McCully)가…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114주년’ (4)
〈한국초대교회 회개운동〉 1. 교회사의 증거 교회 부흥의 역사에서 회개는 언제나 출발점이었다.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교회 개혁운동은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i!),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 오직 교회로(Sola Ecclesia!)” 구호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신앙의 본질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타락한 믿음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신앙 운동이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1907년 평양대부흥 제 114주년” (3)
◊1907년 6월 20일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 7명(뒷줄 왼쪽부터) 방기창(邦基昌), 서경조(徐景昨), 양전백(梁甸伯),(앞줄 왼쪽부터) 한석진(韓錫普), 이기풍(李基豊), 길선주(吉善宙), 송린서(宋麟瑞) 1. 장로회신학교 설립 신학교육은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거룩한 의무였다. 이 의무를 깊이 체득한 인물이 칼빈이었다. 누구보다도 신앙교육을 중시했던 칼빈은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한 후 유럽의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들은 통나무를 보내주십시오. 우리는 불붙는 장작을 만들어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칼빈은…
Continue Reading1945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 반공 의거’
◊1945년 신의주 학생 의거 당시 신문에 실린 주요 참여 학생들 모습 1945년 11월 18일 소련군이 주둔한 평안북도 신의주 서쪽에 있는 용암포에서는 공산당 주도로 광복 직후 전국 각지에 조직된 민중자치기구인 인민위원회를 환영하는 군중대회가 열렸다. 연단에 올라간 학생대표는 애초 축하 연설을 하기로 돼 있었지만 연설 도중 소련군과 공산당의 행패를 규탄하기 시작했고, 군중도 이 연설에 동조하며 분노했다. 군중의…
Continue Reading세계기도모임 미 서부지부 ‘1907년 평양의 대부흥’ (2)
<길선주의 친구 돈 사취 고백이 대부흥 점화>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은 평양, 개성, 서울, 목포 등지로 확산되었고 1907년 1월에는 ‘평양 대(大) 부흥’으로 발전했다. 대부흥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수많은 샛강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큰 강물이 모여 대하(大河)를 이루듯 평양에서의 부흥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결집된 것이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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