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15일 독립 1주년 기념식 민간에선 ‘광복’을 ‘해방’으로 혼동, 역대 정권도 ‘건국 기억’을 홀대 “대한민국 건국의 기억은 당초 ‘독립기념일’이었던 8월 15일이 ‘광복절’로 바뀌면서 혼란스러워졌고,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역대 정권이 이를 외면하거나 폄하하면서 약해져갔다.” 1949년 8월 15일 정부는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날은 민국(民國) 건설 제1회 기념일”이라고 했다. 그해 10월 ‘국경일에 관한…
Continue Reading주여 이 민족을 살려주소서! ‘1907 평양대부흥 제115주년 기념예배’
<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사무총장 박세헌 목사/평화교회 김은목 목사/ 청교도 운동본부 강순영 목사/ KACC 샘신 사무총장/ 세기모 미서부지부 김영구 목사/ 크리스천 헤럴드 이성우 목사> 1월 5일 한인타운의 용수산 식당에서 ‘1907년 1월 14일 평양대부흥’ 제115주년 기념 예배를 위한 준비 모임이 있었다. 이 날 모임은 작년 1월 14일 1907 평양대부흥 114주년을 주최하였던 세계기도모임 미서부지부 (김영구 목사)의 초청으로, 청교도 정신 회복운동본부…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10) ‘황해도 송화군 소재 풍천읍(豊川邑)교회’
<풍천읍교회 2대 담임자인 김윤점 목사의 「김윤점 목사의 신앙일기」> 풍천읍 교회는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풍해면(豊海面) 성상리(城上里)에 있었는데, 풍해면은 후에 풍천읍이 되었고, 이 지역은 사과를 비롯하여 과일들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었다. 풍천읍 교회는 평양에서 이주한 이면주(李冕周)에 의하여 1895년에 설립이 되었고, 지리적으로 평양과 가까웠던 관계로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사무엘 마펫, 그래함 리 등 선교사들이 합류하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특별히 풍천읍…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9) ‘원산(元山)중앙감리교회’
원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항한 이름난 항구 도시로서 부산포(釜山浦)와 제물포(濟物浦)와 함께 조선의 ‘개항3항’이라 불렀다. 그런 관계로 원산에는 외국의 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왔고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고, 1945년 해방 당시 약 15만 명 인구 중 35%가 일본인과 중국인 등 외국인이었다. 원산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경남도로 알고 있지만, 북한은 1946년 9월에 함경남도의 원산과 문천(文川)과 안변(安邊)을 강원도에 편입시켰고, 북한의 강원도 도청…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8) ‘평안북도 선천(宣川)의 재건교회들’
<신사참배 반대로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한 출옥성도들.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김인희 전도사. 제일 왼쪽은 후일 남한지역 재건교회 운동을 이끈 최덕지 전도사. 그 옆은 이기선 목사> *신사참배 한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던 교회들 재건교회는 해방 이후에 설립된 교파로서 장로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파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 당국이 신사참배를 강요에 의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교역자들은 모두 감옥에 수감되었다….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7) 평남 중화군 소재 ‘중화읍(中和邑)교회’
<중화읍교회의 이길함 선교사> 평안남도 중화군은 평양에서 가까운 곳으로서, 북한에서는 점심을 “중화”라고 했는데 평양에서 출발해서 점심 먹을 때쯤 닿는 곳이라고 해서 이곳의 이름이 중화가 되었다고 한다. 중화읍교회는 마펫 선교사의 전도로 회심한 중화군에 살고 있던 김태로(金泰櫓)라는 사람이 평양 장대현 교회를 출석하였는데, 그의 전도로 1897년 5월 13일에 설립이 되었다. 그 후 성장하던 중화읍 교회는1911년에는 장산동(長山洞)교회와 건산교리(乾山橋里)교회를 합병하게 되었다….
Continue Reading‘박정희 대통령 서거 42주년을 맞이하며’
42년 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하셨다. 박 대통령은 생전에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오직 빈곤 국가를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후세에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민족 중흥을…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6) 평양소재 “서문밖〔西門外〕교회”
<큰 부흥을 경험했으나 시대적 아픔 속에 사라진 서문밖교회> 서문밖교회는 1909년 3월 14일 장대현교회에서 분립하여 평양시 하수구리에 설립 되었다. 교회 설립 직후 1913년까지 김선두(金善斗) 목사와 마펫 선교사와 함께 동사목사로 사역을 하다 1916년 숭실전문 졸업생이었던 김선두(金善斗) 목사가 담임으로 사역을 하였다. 김선두 목사는 평양 3.1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일제에 의하여 구금된 후, 1922년부터 황해도 출신의 정일선(丁一善) 목사와 동사목사로 사역을…
Continue Reading‘북한의 잃어버린 성소를 찾아서’ (5) 평양소재 남문밖〔南門外〕교회
<남문밖교회의 모체인 장대현교회> 남문밖교회는 평양에 장대현 교회에 이어 평양의 장로교회들 가운데 두번째로 1903년에 설립 된 교회이다.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인 장대현교회에서 첫 번째로 분립된 교회로서 “제2교회”라고도 불리어졌다. 장대현교회에서 세번째로 분립된 제3교회인 창동(倉洞)교회는, 현재 만수대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 부근인 만수대의사당 자리에 있었다. 그 다음에 분립된 교회가 산정현(山亭峴)교회이고, 산정현교회가 세워질 때는 남문밖교회 교인들이 산정현교회의 부흥을 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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